SEOUL · JONGMYO
종묘 영녕전, 숲 안쪽의 두 번째 사당
리나가 해설 없이 혼자 걷는 토요일 오전, 향대청의 긴 뜰과 전사청의 돌절구를 지나 가운데 네 칸만 지붕이 높은 영녕전까지 가는 길
「창덕궁·창경궁·종묘」에 더하는 편. 영녕전은 1421년 정전의 서북쪽에 따로 지은 사당으로, 가운데 네 칸만 지붕이 높다. 토·일요일과 공휴일, 수요일은 자유롭게 들어가는 일반관람일이다(2026년 10월 1일 확인). 한 번 해설을 따라 정전만 보고 나왔던 리나가, 이번에는 관람코스 순서대로 혼자 걸어 숲 안쪽의 두 번째 사당까지 간다.

가는 길
가는 길의 310m·4분은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종묘 정문까지의 지도 경로 계산값입니다. 궁능유적본부 안내는 11번·8번 출구에서 도보 5분입니다.
「창덕궁·창경궁·종묘」에 새로 더하는 편이다. 이 이슈의 앞 편에서 노아는 평일 영어 해설을 따라 들어가, 정전 앞 월대에서 열아홉 칸짜리 건물을 한 장에 담으려 애썼다. 이번에는 그 정전의 서북쪽, 숲 안쪽에 있는 또 하나의 사당까지 걷는다. 영녕전이다.
리나는 한 번 가 본 곳에 다시 가는 사람이다. 처음 종묘에 왔을 때는 해설사를 따라 50분쯤 걸었고, 기억에 남은 것은 붉은 기둥이 끝없이 이어지던 정전 한 장면이었다. 그 앞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흐릿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혼자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날을 골랐다.
토요일 오전이다. 리나는 수첩 첫 줄에 적는다. 「정전 다음은 어디였더라.」
토요일에는 혼자 걸을 수 있다
궁능유적본부 관람시간: 종묘는 매주 화요일에 쉰다(화요일이 공휴일·대체공휴일과 겹치면 열고 그다음 첫 비공휴일에 쉰다). 토·일요일·공휴일과 문화가 있는 날(매주 수요일)은 자유롭게 들어가는 일반관람일로 2~5월·9~10월 09:00~18:00(입장 17:00), 6~8월 09:00~18:30(입장 17:30), 11~1월 09:00~17:30(입장 16:30)이다.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종묘 정문인 외대문까지는 지도 경로로 310m, 4분이다. 궁능유적본부는 11번이나 8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이라고 안내한다. 리나는 정문 앞에서 요일부터 다시 확인한다. 종묘는 요일에 따라 들어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찾기
궁능유적본부 관람시간 안내(10월 1일 확인)에 따르면 토·일요일과 공휴일, 그리고 수요일은 일반관람일이다. 관람시간 안에는 자유롭게 들어가 둘러볼 수 있고, 9~10월이면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입장은 5시까지다. 월·목·금요일은 정해진 시각에 해설사와 함께 50분쯤 걷는 시간제관람만 되고, 화요일에는 쉰다. 입장료는 대인 1,000원이다.

처음 왔을 때 리나의 동선은 해설사가 정했다. 오늘은 순서를 직접 고를 수 있다. 리나는 궁능유적본부 관람코스에 적힌 순서를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향대청, 재궁, 전사청, 정전, 그리고 영녕전. 마지막 이름이 오늘의 목적지다.
향대청, 남북으로 긴 뜰
궁능유적본부 설명: 향대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쓰도록 친히 내린 향·축문·폐백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앞에 행각이 길게 자리 잡고 있어 두 건물 사이에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졌고, 종묘제례 때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기도 하다.
외대문을 지나면 높은 나무 사이로 가운데 돌길이 곧게 이어진다. 처음 왔을 때 리나는 무리를 따라 이 길을 곧장 걸었다. 오늘은 관람코스의 첫 이름을 찾아 돌길에서 비켜난다. 궁능유적본부 소개에 따르면 종묘 경내에는 정전과 영녕전 말고도 제례를 위한 건물들이 있다. 종묘서의 관원들이 제례 업무를 보던 망묘루, 향과 축문을 보관하던 향대청, 왕과 세자가 제사를 준비하던 재궁, 제사 음식을 마련하던 전사청이다. 지도에서 찾기

향대청은 제사 전날 왕이 직접 내린 향과 축문, 폐백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궁능유적본부 설명으로는 향대청 앞에 행각이 길게 놓여 있어, 두 건물 사이에 남북으로 긴 뜰이 생겼다. 종묘제례 때 제관들이 기다리던 자리이기도 하다.
리나는 그 긴 뜰의 한쪽 끝에 서서 반대쪽 끝까지 눈으로 따라간다. 양옆이 건물이라 뜰이 하나의 긴 복도처럼 보인다. 수첩에 적는다. 「여기서 기다렸다. 향을 받기 전에, 차례가 오기 전에.」 처음 왔을 때는 이런 뜰이 있는 줄도 몰랐다.

돌절구가 남은 마당
궁능유적본부 설명: 전사청은 종묘제례에 올리는 제수(제례 음식)를 마련하던 곳으로, 평소에는 제기 등의 집기를 보관했다. 네모난 마당 둘레에 「ㅁ」 자 모양으로 건물이 들어섰고 마당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돌절구들이 남아 있다. 앞에는 제례 음식을 미리 검사하던 찬막단과 제물로 쓸 소·양·돼지를 검사하던 성생위가 있다.
향대청에서 나와 다음 이름인 재궁을 지난다. 왕이 왕세자와 함께 머물며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갖추던 곳이다. 리나는 처음 왔을 때 해설사가 이 마당에서 한참 이야기하던 것을 기억한다. 오늘은 담 안을 한 번 둘러보고 지나간다. 지도에서 찾기

그다음이 전사청이다. 궁능유적본부 설명에 따르면 종묘제례에 올리는 제수, 곧 제례 음식을 마련하던 곳이고, 평소에는 제기 같은 집기를 보관했다. 네모난 마당 둘레로 건물이 「ㅁ」 자 모양으로 들어섰고, 마당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돌절구들이 남아 있다. 앞에는 제상에 올리기 전 음식을 미리 살피던 찬막단과, 제물로 쓸 소·양·돼지를 살피던 성생위가 있다.
리나는 마당 가장자리에서 돌절구를 하나씩 세다가 끝까지 세지는 않는다. 대신 수첩에 적는다. 「제사는 정전에서, 준비는 여기서.」 향은 향대청에, 음식은 전사청에, 왕은 재궁에. 정전에서 제례가 열리기 전의 준비가 서로 다른 장소에 나뉘어 있었다.
오늘은 정전을 지나 걷는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정전 앞 뜰에는 조선시대 공신 83명의 위패를 모신 공신당과, 일곱 신을 모신 칠사당이 있다. 리나는 정전의 긴 지붕을 한 번 올려다보고, 영녕전이 있는 서북쪽 숲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운데 네 칸만 높은 지붕
궁능유적본부·국가유산청 설명: 영녕전은 정전에서 옮긴 신주를 모시기 위해 1421년(세종 3)에 새로 지은 별묘로 정전의 서북쪽에 있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 조상을 모신 곳이라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지금은 16칸이다.
나무 사이로 낮은 담이 보이고, 그 너머로 긴 기와지붕이 걸린다. 영녕전이다. 정전 앞 월대에서 느꼈던 탁 트인 넓이와는 결이 다르다. 리나에게는 숲이 건물을 조금 더 가까이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도에서 찾기

담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돌 마당 너머로 붉은 기둥이 옆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지붕이 한 줄이 아니다. 가운데 네 칸만 지붕이 한 단 높이 솟아 있고, 좌우로 낮은 지붕이 이어진다. 궁능유적본부 설명에 따르면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 조상을 모신 곳이라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고, 좌우 협실은 각 6칸이다.
리나는 가운데 네 칸 앞에 잠시 선다. 정전에서는 칸들이 모두 같은 높이로 줄을 서 있었다. 여기서는 지붕의 높이가 자리의 순서를 말해 준다. 수첩에 적는다. 「같은 줄, 다른 높이.」

국가유산청은 종묘 전체를 두고, 동시대 단일 목조 건축물 가운데 연건평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지만 장식적이지 않고 유교의 검소함이 깃든 건축물이라고 적는다. 영녕전 앞에 서 보면 그 말이 조금 손에 잡힌다. 리나의 눈에 들어오는 색은 붉은 기둥과 판문, 회색 기와 정도다. 크고 긴 건물인데 눈이 쉴 자리가 많다.
여덟 칸에서 열여섯 칸까지
궁능유적본부 종묘 연표: 영녕전은 1421년(세종 3) 8칸으로 지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1608년(광해군 즉위) 종묘를 중건할 때 10칸, 1667년(현종 8) 2칸을 늘려 12칸, 1836년(헌종 2) 4칸을 늘려 16칸이 되었다. 1836년에는 정전도 4칸을 늘려 19칸이 되었다.
영녕전은 왜 따로 지었을까.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세종 때 정종이 세상을 떠나자 모실 신실이 없어, 중국 송나라 제도를 따라 세종 3년인 1421년에 영녕전을 세우고 태조의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셨다.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도 이곳으로 옮겨졌다. 국가유산청은 지금 영녕전의 16칸 신실에 15분의 왕과 17분의 왕후,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고 적는다. 지도에서 찾기
궁능유적본부 연표를 보면 이 건물도 처음부터 열여섯 칸은 아니었다. 1421년에 8칸으로 지었고,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1608년에 10칸으로 다시 지었다. 1667년에 2칸을 늘려 12칸이 되었고, 1836년에 4칸을 더해 지금의 16칸이 되었다. 같은 1836년에 정전도 4칸을 늘려 19칸이 되었다.
국가유산청은 영녕전을 17세기 중기 건축 양식을 보여 주는 건물로 소개한다.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목적에 맞게 구조와 장식, 색을 간결하고 장중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옛 방식을 따라 입구에 널문을 달고 발을 쳤고, 안쪽 방 사이는 벽 대신 발을 늘어뜨려 나눴다고 한다. 리나는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붉은 판문 너머를 그 설명대로 떠올려 본다.
리나는 수첩에 숫자를 나란히 적는다. 「8 → 10 → 12 → 16.」 노아가 정전에서 적은 「7 → 11 → 15 → 19」 옆에 두고 보니, 궁능유적본부 연표에서 두 건물의 마지막 증축 기록은 모두 1836년이다.
돌아 나오는 길, 리나는 숲 사이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보고 수첩에 그려 둔 지붕선을 떠올린다. 가운데만 조금 높은 선이다. 처음 왔을 때의 종묘는 정전 한 장면이었다. 이제는 향을 두던 긴 뜰과 음식을 준비하던 마당, 그리고 숲 안쪽의 두 번째 사당까지 한 줄의 길로 이어진다.
리나의 조용한 추천은 두 가지다. 혼자 천천히 걷고 싶다면 일반관람일인 토·일요일과 공휴일, 수요일을 고를 것. 월·목·금요일은 해설을 따라 걷는 날이고, 화요일은 쉰다. 그리고 정전에서 발길을 돌리지 말고 영녕전까지 갈 것. 관람코스의 마지막 이름이 거기 있다.

(※ 이 글의 사진은 AI로 제작한 연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주말에 옮겨 보기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종묘 외대문으로 들어가, 궁능유적본부 관람코스 순서대로 향대청과 재궁·전사청, 정전을 지나 영녕전까지 걷는 편집 제안입니다. 혼자 걸을 수 있는 날은 일반관람일(토·일요일·공휴일·수요일)입니다. 310m·4분은 11번 출구에서 외대문까지의 지도 경로 계산값이고, 궁능유적본부 안내는 11번·8번 출구에서 도보 5분입니다.
순서를 보여 주는 개념도 · 축척·방위·실제 길 모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가는 길
TMAP확인 2026.09.24
1·3·5호선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종묘 정문(외대문)까지 지도 경로로 310m·4분(TMAP 보행자 경로 계산값).
궁능유적본부 오시는 길확인 2026.09.24
종묘는 1·3·5호선 종로3가역 11번 출구 또는 8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이다. 주소는 종로구 종로 157이고, 종묘관리소가 운영하는 주차시설은 없다.
운영 시간·요금
궁능유적본부 관람시간확인 2026.10.01
종묘는 매주 화요일에 쉰다(화요일이 공휴일·대체공휴일과 겹치면 열고 그다음 첫 비공휴일에 쉰다). 토·일요일·공휴일과 문화가 있는 날(매주 수요일)은 자유롭게 들어가는 일반관람일로 2~5월·9~10월 09:00~18:00(입장 17:00), 6~8월 09:00~18:30(입장 17:30), 11~1월 09:00~17:30(입장 16:30)이다.
궁능유적본부 관람시간확인 2026.10.01
월·목·금요일은 시간제관람일이다. 정해진 시각에 입장해 해설사와 함께 50분 정도 관람하고, 이날은 일반관람을 할 수 없다. 언어권별로 한 회에 200명(인터넷 예매 100명·현장 발매 100명)까지 들어간다. 영어 해설은 10:00·12:00·14:00·16:00, 일본어는 09:40·11:40·13:40·15:40, 중국어는 11:00·15:00, 한국어는 09:20부터 16:20까지 매시 20분이고, 3~9월에는 16:40이 더 있다.
궁능유적본부 관람요금확인 2026.09.24
종묘 대인 1,000원(내국인 만25~64세, 외국인 만19~64세). 4대궁과 종묘를 묶은 궁궐 통합관람권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알아 두면 좋은 이야기11
궁능유적본부 관람코스(종묘)확인 2026.10.01
향대청 → 재궁 → 전사청 → 정전 → 영녕전 순서로 안내한다.
궁능유적본부 종묘 소개확인 2026.10.01
종묘 경내에는 정전·영녕전 말고도 망묘루(종묘서 관원들이 제례에 관한 업무를 보던 곳), 향대청(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 재궁(왕과 세자가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 전사청(제사의 음식을 마련하는 곳) 등의 건물이 있다.
궁능유적본부 설명확인 2026.10.01
향대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쓰도록 친히 내린 향·축문·폐백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앞에 행각이 길게 자리 잡고 있어 두 건물 사이에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졌고, 종묘제례 때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기도 하다.
궁능유적본부 설명확인 2026.09.24
재궁은 왕이 머물면서 왕세자와 함께 제례를 준비하던 곳이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 왕의 어재실, 동쪽에 세자재실, 서쪽에 어목욕청이 있고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왕과 왕세자는 이곳에서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갖췄다.
궁능유적본부 설명확인 2026.10.01
전사청은 종묘제례에 올리는 제수(제례 음식)를 마련하던 곳으로, 평소에는 제기 등의 집기를 보관했다. 네모난 마당 둘레에 「ㅁ」 자 모양으로 건물이 들어섰고 마당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돌절구들이 남아 있다. 앞에는 제례 음식을 미리 검사하던 찬막단과 제물로 쓸 소·양·돼지를 검사하던 성생위가 있다.
국가유산청 사적 「종묘」 설명확인 2026.10.01
정전 앞 뜰에는 조선시대 83명 공신의 위패를 모신 공신당과, 토속신앙·유교사상과 관련된 일곱 신을 모신 칠사당이 있다. 종묘는 동시대 단일 목조건축물 가운데 연건평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지만, 장식적이지 않고 유교의 검소함이 깃든 건축물이다.
궁능유적본부·국가유산청 설명확인 2026.09.24
영녕전은 정전에서 옮긴 신주를 모시기 위해 1421년(세종 3)에 새로 지은 별묘로 정전의 서북쪽에 있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 조상을 모신 곳이라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지금은 16칸이다.
국가유산청 설명확인 2026.10.01
세종 때 정종이 죽자 모셔 둘 신실이 없어, 중국 송나라 제도를 따라 세종 3년(1421) 영녕전을 세워 태조의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셨다.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도 이곳에 옮겨 모셨다. 지금 영녕전의 16칸 신실에는 15분의 왕과 17분의 왕후, 조선 마지막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궁능유적본부 종묘 연표확인 2026.10.01
영녕전은 1421년(세종 3) 8칸으로 지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1608년(광해군 즉위) 종묘를 중건할 때 10칸, 1667년(현종 8) 2칸을 늘려 12칸, 1836년(헌종 2) 4칸을 늘려 16칸이 되었다. 1836년에는 정전도 4칸을 늘려 19칸이 되었다.
국가유산청 보물 「종묘 영녕전」 설명확인 2026.10.01
17세기 중기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건물로,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목적에 맞게 구조와 장식·색 등이 간결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일부 구조는 옛 방식을 따라 입구에 널문을 달고 발을 쳤으며, 건물 안쪽 방 사이에는 담벽을 치지 않고 발을 늘여 나누었다.
국가유산청 설명확인 2026.09.24
종묘는 1395년에 완성되었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무형유산에 올랐다.
- 종묘는 매주 화요일에 쉽니다(공휴일과 겹치면 열고 다음 첫 비공휴일에 쉽니다). 토·일요일·공휴일·수요일은 자유롭게 들어가는 일반관람일로 2~5월·9~10월 09:00~18:00(입장 17:00), 6~8월 09:00~18:30(입장 17:30), 11~1월 09:00~17:30(입장 16:30)입니다(궁능유적본부, 2026년 10월 1일 확인).
- 월·목·금요일은 해설사와 함께 50분쯤 걷는 시간제관람만 되며, 언어별로 한 회 200명(인터넷 예매 100명·현장 발매 100명)입니다. 영어 해설은 10:00·12:00·14:00·16:00입니다. 대인 1,000원이며 궁궐 통합관람권으로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연휴·행사 기간에 방문할 때는 궁능유적본부의 종묘 공지에서 관람 방식과 시간을 확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