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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유리 상자 너머로 보는 12미터의 탑

인사동 골목에서 종로로 한 블록 나오면 큰길에 붙은 공원이 있다. 문은 삼일문, 안에는 1467년의 대리석 탑이 유리 보호각 안에 서 있다.

큰길 보도에서 비스듬히 본 기와지붕의 공원 정문과 이어지는 낮은 담장, 가로수, 오후 빛. 편집 이미지.

앞의 세 편은 루루와 마야가 인사동길과 골목 안쪽을 걸었다. 오늘은 노아 혼자, 그 골목에서 종로 쪽으로 한 블록 나온 자리다. 탑골공원. 큰길에 담장을 대고 붙어 있는 공원이고, 안에 국보가 하나 서 있다.

노아는 거리를 눈으로 읽는 사람이다. 표지, 사람의 흐름, 건물의 모서리, 빛. 그 눈으로 오늘 보러 가는 것은 탑이 아니라, 탑을 감싼 유리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1999년부터 유리 보호각 안에 있다. 밖에서 보면 유리에 종로의 거리가 비치고, 그 뒤에 탑이 있다. 두 장면이 한 화면에 겹친다.

그리고 이 유리는 오래 남지 않는다. 국가유산위원회가 올해 8월 임시 보호시설 안을 조건부로 가결했고, 계획대로면 2028년에 지금의 보호각을 걷어 낸다. 노아가 오늘 보는 장면은 몇 년 안에 없어질 판이다. 그러니 오늘의 물음은 이것이다. 유리 너머로 보는 국보는 어떤 장면인가, 그리고 그 유리가 없어지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종로에서 삼일문까지 — 큰길에 붙은 공원

종로 99(종로2가). 1호선 종로3가역 1번 출구에서 종로를 따라 255m·4분,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에서 426m·6분(TMAP 보행자, 출구 → 삼일문). 정문은 종로 쪽 삼일문.

종로3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종로다. 왕복 여러 차로의 큰길, 그 북쪽 보도. 서쪽으로 걷는다. 지도 경로로 255미터, 4분. 노아는 거리를 세지 않고 담장을 본다. 보도 오른쪽에 낮은 담장이 이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공원이다. 종로 북측 보도 바로 옆으로 공원의 낮은 담장이 이어진다. 지도에서 찾기

지하철 출구 앞 넓은 큰길의 보도, 서쪽으로 이어지는 가로수와 담장. 편집 이미지.
종로3가역 1번 출구 앞, 서쪽으로 이어지는 종로의 보도

정문은 종로 쪽에 있고 이름은 삼일문이다. 三一. 1919년 3월 1일에서 온 이름이다. 이 공원에서 그날 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읽었다는 사실은 국가유산포털의 사적 안내에 있다. 노아는 현판을 올려다보고, 이 문이 큰길 쪽으로 열려 있다는 것을 본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큰길이 곧장 들어오는 문이다.

현판이 걸린 기와지붕 문을 아래에서 올려다본 장면, 문 너머로 공원 길. 편집 이미지.
삼일문 현판 아래 — 큰길 쪽으로 열린 정문

노아의 장면에서는 문을 지나도 종로의 소리가 담장 안까지 따라온다. 노아가 먼저 알아챈 것은 그것이다. 인사동 골목은 큰길에서 한 번 꺾으면 소리가 반쯤 줄었다고 마야가 적었는데, 여기는 담장 안에서도 종로의 소리가 그대로다. 공원이 큰길에 붙어 있다는 뜻이다. 노아는 그것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이 공원은 원래 그런 자리다.

삼일문 안쪽에 서서 한 바퀴 본다. 길이 있고, 나무가 있다. 노아의 다음 시선은 공원 안쪽의 유리 보호각으로 옮겨 간다. 오늘 보러 온 것이다.

공원 정문 앞 보도에 선 젊은 남성의 옆모습, 밤색 웨이브 머리, 네이비 스웨터와 올리브 배낭. 편집 이미지.
삼일문 앞 보도에 선 노아의 옆모습

유리 너머의 십층석탑 — 12미터가 상자 안에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1467년(세조 13) 완성된 높이 약 12m 의 대리석 탑이다. 기단은 3단으로 위에서 보면 亞자형이고, 탑신 10층 중 3층까지는 같은 亞자형, 4층부터 정사각형이며 각 층에 지붕·공포·기둥 같은 목조건축 요소를 새겼다(국가유산포털 국보 설명).

가까이 가면 유리 상자 안에 탑이 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 1467년에 완성된 대리석 탑이고 높이는 약 12미터다. 이 자리에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고, 절은 사라지고 탑이 남았다. 국보다. 노아는 유리 앞에 서서 먼저 탑을 보지 않고 유리를 본다. 유리에 종로가 비친다. 노아의 장면에서는 버스의 색과 맞은편 창, 보도의 움직임이 유리 위에 겹친다. 그 뒤에, 반사를 뚫고, 탑이 있다. 지도에서 찾기

유리 구조물 너머로 보이는 높은 대리석 탑, 유리 표면에 비친 거리의 버스와 건물. 편집 이미지.
유리 너머의 십층석탑과 유리에 비친 종로

노아의 눈에는 이것이 두 장면의 겹침으로 보인다. 앞의 장면은 거리이고 뒤의 장면은 1467년이다. 둘이 같은 유리 위에 있다. 화면에서 유물은 늘 배경을 지우고 나온다. 어두운 전시실, 하나의 조명. 여기서는 배경이 지워지지 않는다. 거리가 유리 위에 남아 있다.

각도를 바꾼다. 가까운 거리에서 각도를 바꾸면 반사가 덜 겹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거기서는 탑이 남는다. 탑은 아래에서 위로 읽힌다. 기단은 세 단이고, 위에서 보면 亞자 모양이라고 안내는 적었다. 그 위로 탑신 10층.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亞자형이고 4층부터 정사각형이다. 노아는 그 바뀌는 지점을 찾는다. 3층과 4층 사이. 평면이 바뀌면 그림자가 바뀐다.

유리 너머로 올려다본 석탑의 층층 — 새겨진 지붕과 기둥, 회백색 대리석. 편집 이미지.
유리 가까이에서 올려다본 탑신 — 층마다 지붕과 기둥

각 층에는 지붕과 공포와 기둥이 새겨져 있다. 돌로 만든 탑이 나무 건물을 흉내 낸다. 노아는 이것을 하나의 단서로 적는다. 「층마다 지붕이 있다. 건물처럼 읽으면 된다.」 12미터에 10층. 사람이 드나드는 건물의 비례가 아니다. 그래서 탑이다.

석탑 기단의 모서리 근경, 亞자형으로 꺾인 돌과 조각, 유리 너머. 편집 이미지.
亞자형 기단의 모서리, 유리 너머

유리에서 물러나면 다시 종로가 돌아온다. 노아는 이 왕복을 몇 번 한다. 가까이 가면 탑, 물러나면 거리. 화면은 이 왕복을 보여 주지 않는다. 화면은 가까이 간 쪽만 보여 준다.

유리 앞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젊은 남성의 3/4 뒷모습, 밤색 웨이브 머리, 네이비 스웨터, 유리에 흐리게 비친 거리. 편집 이미지.
유리 앞에서 탑을 올려다보는 노아, 유리에 흐리게 비친 거리

유리에 관해 — 1999년과 2028년

석탑은 1999년 12월 설치된 유리 보호각 안에 있다(산성비·조류 배설물 대비). 국가유산위원회는 2026년 8월 높이 18.6m 돔형 목구조 임시 보호시설 안을 조건부 가결했고, 2027년 세부 설계를 거쳐 2028년 기존 보호각을 철거할 계획이다(경향신문 2026-09-16).

왜 유리인가. 기사에 따르면 이 보호각은 1999년 12월에 설치됐다. 산성비와 새의 배설물에서 대리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대리석은 우리나라 석탑에 흔한 돌이 아니고, 이 탑은 그 흔치 않은 돌로 만들어졌다. 노아는 유리 안쪽 탑의 표면을 본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있다. 어느 쪽이 원래 색인지는 노아가 판단하지 않는다. 지도에서 찾기

같은 기사는 이 유리의 문제도 적었다. 두꺼운 유리의 반사 때문에 밖에서 보기 어렵다는 것,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안쪽에 결로가 생기고 통풍이 부족하다는 것. 같은 기사에도 유리 반사 때문에 밖에서 석탑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혀 있다. 노아가 방금 유리 앞에서 겪은 것이다. 노아는 이것을 대조로 적는다. 「내가 본 것과 문서가 적은 것이 같다. 반사.」

그래서 바꾼다. 국가유산위원회는 올해 8월 회의에서 높이 18.6미터의 돔 형태 목구조 임시 보호시설 안을 조건부로 가결했다. 지붕이 있고 자연 환기가 되는 구조다. 2027년에 세부 설계와 매장유산 조사를 하고, 2028년에 지금의 유리 보호각을 철거하는 계획이다. 계획은 계획이다. 그래도 방향은 정해졌다.

노아는 공원 안 길을 한 바퀴 돈다. 나무 아래 벤치, 길, 담장 너머의 큰길. 걸으면서 생각한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28년 이후에는 지금 이 유리에 비친 종로라는 장면을 볼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좋은 일이라는 데 노아는 동의한다. 탑은 탑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래도 오늘의 장면 — 거리와 1467년이 한 유리 위에 겹친 장면 — 은 오늘만의 것이다. 노아는 그것을 한 줄로 남긴다. 「계획대로라면, 이 반사는 2028년까지다.」

공원 안의 길과 나무, 벤치, 담장 너머로 큰길의 건물. 편집 이미지.
공원 안 길과 나무, 담장 너머의 큰길

거북 받침의 비 — 화강암과 대리석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 2) 원각사 창건 내력을 적어 세운 비로 전체 높이 494cm 다. 거북 받침은 화강암,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 한 돌이고,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두 마리 용이 몸돌 위를 감싸듯 새겼다(국가유산포털 보물 설명).

같은 공원 안에 비가 하나 있다. 대원각사비. 1471년에 원각사를 세운 내력을 적어 세운 비고, 전체 높이는 494센티미터다. 보물이다. 비는 기둥과 지붕만 있는 목조 보호각 아래 서 있다. 노아가 먼저 보는 것은 글이 아니라 받침이다. 거북이다. 거북이 비를 지고 있다. 지도에서 찾기

기둥과 지붕만 있는 목조 보호각 아래, 거북 모양 받침 위에 선 대리석 비, 위쪽에 용 조각. 편집 이미지.
목조 보호각 아래, 거북 받침 위의 대원각사비 — 화강암과 대리석

안내는 재료를 갈라 적었다. 거북 받침은 화강암,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 한 돌. 노아는 이것을 탑과 대조한다. 탑은 대리석, 비의 몸도 대리석, 그러나 비를 받친 거북은 화강암. 같은 자리에 두 종류의 돌이 있다. 화강암은 이 나라 석탑에 흔한 돌이고 대리석은 흔치 않은 돌이다. 흔한 돌이 흔치 않은 돌을 받치고 있다.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두 마리 용이 몸돌 위를 감싸듯 새겨져 있다. 노아는 위를 본다. 용은 있는데 머릿돌이 없다. 탑은 층마다 지붕을 새겼는데 비는 제 머릿돌이 없다. 같은 절에서 나온 두 돌이 서로 다르게 위를 마감했다. 노아는 이 차이를 좋아한다. 하나를 보고 다른 하나와 대조하면 둘 다 더 잘 보인다.

비문은 읽지 않는다. 읽을 수 있는 상태인지, 무슨 글인지는 안내가 따로 적고 있고, 노아의 눈은 글보다 형태를 읽는다. 거북의 등, 용의 곡선, 494센티미터의 세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팔각정과 시간 — 6시에 닫는 공원

탑골공원은 서울에 처음 만들어진 근대식 공원이다. 고종 때 총세무사 브라운의 제안으로 계획됐고, 1919년 3월 1일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원각사 터여서 국보 십층석탑과 보물 대원각사비가 남아 있다(국가유산포털 사적 안내).

공원 가운데에 팔각정이 있다. 여덟 모서리의 정자. 1919년 3월 1일 학생들이 여기 모여 이 정자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었다고 사적 안내는 적는다. 노아는 정자 앞에 서서 그 문장을 한 번 읽고, 그 이상은 적지 않는다. 이 자리의 무게는 안내판이 이미 지고 있다. 노아가 더할 것은 없다. 지도에서 찾기

공원 가운데의 팔각형 정자, 기와지붕과 기둥. 편집 이미지.
공원 가운데의 팔각정

대신 정자에서 삼일문 쪽을 돌아본다. 문, 길, 유리 상자, 정자. 이 공원은 서울에 처음 만들어진 근대식 공원이라고 안내는 적었다. 고종 때 총세무사였던 브라운이라는 사람의 제안으로 계획됐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안내판과 설명문이 조금 다르게 적고 있어서, 노아는 연도를 적지 않는다. 대신 배치를 적는다. 「문 — 탑 — 정자. 한 줄로 서 있지 않다.」

공원은 3월부터 10월까지 아침 9시에 열어 저녁 6시에 닫는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5시. 쉬는 날은 없다. 노아는 시계를 본다. 오후 빛이 유리에 비스듬히 든다. 반사가 가장 심한 시간과 가장 덜한 시간이 있을 텐데, 그것은 하루를 여기서 보내야 알 수 있는 것이라 노아는 적지 않는다.

삼일문으로 나온다. 담장 밖은 바로 종로다. 노아는 보도에 서서 한 번 뒤를 돌아본다. 문 너머 공원 안쪽에 있는 유리 보호각 쪽을 한 번 더 돌아본다. 큰길에서 문 하나 너머에 국보가 있다. 큰길에 붙은 공원의 장점이다. 인사동 시리즈는 한 자리를 더 남긴다. 마당이 있는 절. 그건 다른 사람의 오후다.

큰길에 붙은 공원, 유리 상자 안의 12미터, 거북 위의 494센티미터, 여덟 모서리의 정자. 노아가 오늘 본 것은 넷인데 적은 것은 한 줄이다. 「계획대로라면, 이 반사는 2028년까지다.」 유리에 종로가 비치는 장면은 화면에는 없는 장면이고, 현재 계획대로라면, 몇 년 뒤에는 현장에서도 볼 수 없게 될 장면이다.

화면은 유물을 배경 없이 보여 준다. 첫 방문자는 배경과 같이 본다. 그 배경이 유리 위에 비친 거리라는 것이 탑골공원의 지금이고, 노아는 지금을 봤다.

큰길 보도에서 뒤를 돌아보는 젊은 남성의 허리 위, 밤색 웨이브 머리, 네이비 스웨터, 차분한 표정. 편집 이미지.
종로 보도로 나와 문 쪽을 돌아보는 노아

(※ 이 글의 사진은 AI로 제작한 연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접 가려면

종로3가역에서 삼일문으로 들어가 탑·비·정자를 보고 나오는 데 30분에서 40분을 잡아 보세요. 유리 앞에서 머무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고, 도보 시간은 지도 경로 계산값입니다.

오늘의 이동 순서

순서를 보여 주는 개념도 · 축척·방위·실제 길 모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1. 종로3가역 → 종로 보도 → 삼일문 — 1호선 종로3가역 1번 출구에서 종로 북쪽 보도를 따라 서쪽으로 약 255m, 4분.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에서는 동쪽으로 약 426m, 6분. 정문은 종로 쪽 삼일문입니다. 지도에서 찾기
  2. 원각사지 십층석탑 — 유리 보호각 안에 있습니다. 밖에서 반사가 겹치면 위치와 보는 각도를 조금 바꿔 보세요. 기단 3단, 탑신 10층 — 3층과 4층 사이에서 평면이 바뀝니다. 지도에서 찾기
  3. 대원각사비 — 탑 가까이의 거북 받침 비. 받침은 화강암, 몸돌은 대리석 — 탑과 같은 돌과 다른 돌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찾기
  4. 팔각정 → 삼일문 — 공원 가운데의 팔각정을 보고 삼일문으로 나오면 바로 종로입니다. 지도에서 찾기
방문 정보

가는 길

TMAP확인 2026.09.22

종로 99(종로2가). 1호선 종로3가역 1번 출구에서 종로를 따라 255m·4분,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에서 426m·6분(TMAP 보행자, 출구 → 삼일문). 정문은 종로 쪽 삼일문.

운영 시간·요금

TourAPI확인 2026.09.22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연중무휴(한국관광공사 TourAPI, 2026-06 갱신 · 2026-09-22 확인).

알아 두면 좋은 이야기1

확인 2026.09.22

석탑은 1999년 12월 설치된 유리 보호각 안에 있다(산성비·조류 배설물 대비). 국가유산위원회는 2026년 8월 높이 18.6m 돔형 목구조 임시 보호시설 안을 조건부 가결했고, 2027년 세부 설계를 거쳐 2028년 기존 보호각을 철거할 계획이다(경향신문 2026-09-16).

방문 전에 알아야 할 것
  •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연중무휴 — 한국관광공사 TourAPI 2026년 6월 갱신, 9월 22일 확인. 문의 종로구청 도시녹지과 02-2148-2843.
  • 유리 보호각은 2028년 철거 계획(국가유산위원회 2026년 8월 조건부 가결, 경향신문 2026년 9월 16일). 계획은 바뀔 수 있습니다. 방문 전에 공사 여부를 확인하세요.
  • 이 글은 유리 보호각 바깥에서 석탑을 보는 동선을 안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