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 ANGUK
집에 가는 시간에 본 집의 전시, 이선이 수요일 저녁 무료 시간에 걸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도호」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동십자각을 지나 서울관까지, 지하1층 3·4·5전시실 동선과 수·토 야간 무료 관람·관람료·휴관일
방이맛골에서 넷이 저녁을 먹은 지 이틀 뒤, 이선은 수요일 회의를 마치고 안국역으로 향했다. 집과 이주를 다룬다는 전시를,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에 보고 싶었다.

가는 길
수요일 아침, 이선은 호텔 책상에서 수첩을 펼쳤어요. 이틀 전 방이맛골에서 넷이 저녁을 먹은 뒤로 수첩에는 처음으로 숫자 대신 이름이 붙은 선이 몇 개 생겼습니다. 리나의 칸을 보고 빌려 온 방식이었어요. 맨 뒷장에는 리나가 적어 준 「종로3가 — 서순라길 — 아침」과 그 옆에 이선이 그린 작은 물음표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출장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그 물음표는 아직 지울 수 없었어요.

시애틀에서 기계를 설계하는 마흔네 살 엔지니어 이선은 어디를 가든 먼저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에요. 시장이든 호수든 섬이든 출구에서 시작하는 선을 긋고, 선마다 거리와 분을 적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 이선이 이번 출장 마지막 주에 고른 곳은 미술관이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026년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 열리는 「서도호」전이었습니다. 미술관 소개를 읽어 보니, 이 전시는 설치미술가 서도호가 이주와 거주, 개인과 공동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공간과 기억, 정체성을 다뤄 온 작업을 초기작부터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한데 모은 대규모 개인전이었어요.
이선의 눈에 걸린 건 목록에 붙은 세 단어였습니다. 「설치미술, 집, 정체성」. 집이라는 말이 전시의 한가운데 있다는 게 엔지니어에게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대목이었어요. 이선은 예전에 이태원에서 6년을 지냈고, 지금은 시애틀과 서울을 출장으로 오가며 호텔 방을 잠깐씩 집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공간을 선과 숫자로만 그려 온 사람이, 집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으로 본다는 작가의 방에서 무엇을 적어 오게 될지 이선은 스스로도 궁금했어요.
이 글은 그 수요일 저녁의 이야기이자, 서도호전을 보러 가는 사람을 위한 안내입니다.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동십자각을 지나 서울관까지 걷는 길,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의 무료 관람 시간, 1층 로비에서 지하1층 3·4·5전시실로 내려가는 동선, 그리고 전시실에서 무엇을 보면 좋은지를 이선의 수첩을 따라 차례로 적었어요. 관람료와 휴관일, 12월 1일 임시 휴관까지 출발 전에 알아 둘 것도 함께 담았습니다.
The Cue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울 종로구 삼청로 30)에서 「서도호」전이 2026년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 지하1층 3·4·5전시실에서 열립니다. 관람료는 8,000원이에요. 미술관은 월·화·목·금·일요일 10:00~18:00, 수·토요일 10:00~21:00에 열고, 수·토요일 18:00~21:00 야간개장 시간에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요.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도 무료 관람일입니다. 1월 1일·설날·추석에 쉬고, 2026년 12월 1일(화)은 임시 휴관이에요.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500m, 동십자각에서 우측으로 꺾어 다시 500m를 걸으면 오른편에 미술관이 있습니다.
- 어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소격동). 문의 02-3701-9500.
- 전시: 「서도호」, 2026년 8월 27일 ~ 2027년 2월 9일, 지하1층 3·4·5전시실.
- 관람료: 8,000원. 수·토요일 18:00~21:00 야간개장 시간과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무료 관람.
- 관람 시간: 월·화·목·금·일 10:00~18:00 · 수·토 10:00~21:00.
- 휴관: 1월 1일, 설날, 추석. 임시 휴관 2026년 12월 1일(화).
- 무료·할인(서울관 관람 안내): 만 24세 이하, 만 65세 이상, 대학생(학부생), 장애인 및 동행보호자, 문화누리카드 소지자는 무료. 다자녀카드 소지자 20%, 예술인패스 소지자 50% 할인(신분증·증명서류 제시).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오른쪽 500m → 동십자각에서 우측 500m) ·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 들어가자마자: 입구 바로 앞에 물품보관소와 화장실, 로비에 매표소와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수·토 저녁 6시부터 무료, 이선이 수요일 야간개장을 고른 이유
출장 중인 이선에게 평일 낮의 미술관은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어요. 회의는 대개 저녁 무렵에 끝나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월·화·목·금·일요일에는 오전 10시에 열어 오후 6시에 닫습니다. 그런데 수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열고, 저녁 6시부터 9시까지는 야간개장으로 무료 관람이에요. 관람 안내에서 이 줄을 찾은 이선은 수첩 맨 위에 「수 18 → 21, 0원」이라고 적었습니다. 시간과 값을 한 줄에 같이 적어야 계획이 선다는 게 이선의 습관이에요.

토요일 저녁도 같은 조건이었지만, 이선은 수요일을 골랐어요. 출장 마지막 주의 토요일은 짐을 싸고 남은 일을 정리하느라 빠듯할 것 같았거든요. 무엇보다 이선은 이 전시를 퇴근 시간에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집이 무엇인지 묻는 전시실을 걷는 순서가 마음에 들었어요. 엔지니어답지 않은 이유라는 걸 알면서도, 이선은 수첩에 「집에 가는 시간 — 집의 전시」라고 한 줄을 더 남겼습니다.
언제 갈지 고르는 중이라면 이선처럼 요일부터 정해 보세요. 낮에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관람료 8,000원을 내고 오전 10시부터 천천히 보면 되고, 저녁밖에 시간이 없다면 수요일이나 토요일 6시 이후를 노리면 됩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요. 다만 2026년 12월 1일(화)은 임시 휴관이라, 12월 첫 주에 일정을 짠다면 이 날짜는 피하는 편이 좋아요.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동십자각을 지나 서울관까지, 500m 두 번의 길
수요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회의가 끝나자 이선은 3호선을 탔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안내하는 지하철 길은 세 가지인데, 이선은 지도 그림이 가장 단순한 안국역 1번 출구를 골랐습니다.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500m 정도 직진하면 동십자각이 보이고, 거기서 우측으로 꺾어 다시 500m를 직진하면 오른편에 미술관이 있어요. 이선의 수첩에는 꺾인 선 하나와 두 개의 「500」, 그리고 꺾이는 자리에 찍은 점 하나가 그려졌습니다.

출구를 나서자 하늘은 이미 저녁빛이었어요. 이선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첫 번째 500m 끝에 동십자각이 보이면 꺾는다는 것 하나만 떠올리며 걸었습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이 꺾는 자리 하나만 챙기면 돼요. 동십자각이 보이면 우측으로 돌고, 다시 곧게 500m를 걸으면 오른쪽에 미술관이 나옵니다.
다른 두 길도 이선은 수첩 귀퉁이에 따로 그려 두었어요.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쪽으로 광화문삼거리까지 300m 정도 직진해 광화문 쪽 횡단보도를 건너고, 안국역 방향으로 약 300m를 가면 동십자각이 보입니다.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는 500m를 직진해 횡단보도를 건넌 뒤 안국역 방향으로 약 300m를 가면 같은 동십자각이 나와요. 두 길 모두 동십자각에서 좌측으로 꺾어 500m 정도 걸으면 횡단보도 맞은편 오른쪽에 미술관이 있어서, 이선은 세 선이 한 점에서 만나는 그림에 「동십자각 — 꺾는 점」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미술관이 서 있는 자리에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과거 국군기무사령부가 있던 종로구 소격동 자리에, 2013년 11월 전시실과 프로젝트갤러리, 영화관, 다목적홀 등을 갖춘 복합 시설로 문을 열었어요. 이선은 이 대목을 읽고 수첩 한쪽에 「소격동 — 2013. 11」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어떤 용도로 쓰이던 땅이 전혀 다른 쓰임의 건물이 됐다는 이야기는, 기계를 고쳐 다른 공정에 다시 쓰는 일을 오래 해 온 이선에게 낯설지 않았어요.
두 번째 500m의 끝에서 오른편에 미술관이 보이자 이선은 시계를 봤습니다. 6시까지 몇 분이 남아 있었어요. 무료 관람 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선은 수첩의 꺾인 선 끝에 작은 십자를 찍고, 그 옆에 숫자 대신 이름을 적었습니다. 「서울관」. 월요일 저녁에 리나에게서 빌려 온 방식이었어요.
1층 로비에서 지하1층으로, 서울관 층별 안내로 그린 지하1층 도면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물품보관소와 화장실이 보여요. 이선은 코트를 벗어 팔에 걸고, 가방은 어깨에 바짝 붙였습니다. 전시실을 오래 걸을 생각이라면 손이 가벼운 편이 좋다는 걸, 서울함 안을 하루 종일 걸었던 날 배웠거든요. 로비에는 매표소와 엘리베이터, 비상계단이 있고, 로비 1층에는 미술가게와 미술책방도 자리하고 있어요. 이선은 수첩만 손에 들고 로비 한가운데에서 잠깐 멈춰 섰습니다.

이선이 미리 읽어 온 층별 안내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마당의 이름들이었어요. 1층에는 「미술관마당」과 「열린마당」이, 지하1층에는 「전시마당」이, 3층에는 「경복궁마당」이 있습니다. 한 건물 안에 마당이 네 개라는 게 이선에게는 꽤 인상적이었어요. 한옥의 마당처럼 방과 방 사이를 비워 두는 방식으로 건물을 나눴다는 뜻일 테니까요. 수첩에는 네 마당의 이름이 층별로 한 줄씩 적혔습니다.
서도호전은 지하1층에 있어요. 지하1층에 내려가면 오른쪽에 2전시실이 있고, 2전시실을 기준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3전시실, 4전시실, 5전시실이 이어집니다. 5전시실 왼쪽에는 MMCA다원공간, 맞은편에는 6전시실이 있어요. 이선은 이 문장을 그대로 옮겨, 2에서 시작해 반시계 방향으로 3, 4, 5가 이어지는 칸 네 개를 그렸습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지하1층에 내려가 오른쪽 2전시실을 기준점으로 잡고, 거기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 서도호전의 세 전시실을 차례로 만날 수 있어요.
지하1층에도 안내데스크가 두 곳 있습니다. MMCA다원공간 앞과 6전시실 앞이에요. 화장실은 MMCA영상관 옆과 미디어랩 옆에 있어서, 오래 걸을 계획이라면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에 위치를 한 번 봐 두면 편해요. 이선도 칸 네 개 옆에 화장실 자리를 작은 동그라미 두 개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도면에 사람이 쉬는 자리를 넣는 건 이선이 공장 설비를 그릴 때부터 지켜 온 버릇이에요.
전시실 밖에서 시작하는 「서도호」, 시드 뱅크와 처음 공개되는 초기 작업
이선은 전시를 보기 전에 미술관 누리집의 전시 페이지에 올라 있는 오디오가이드 열두 꼭지의 글을 미리 읽어 두었어요. 그리고 오늘은 꼭지 번호를 따라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첫 꼭지는 이 전시가 주제에 따라 작품을 나누기보다, 초기 작업과 최근 작업, 드로잉과 설치, 집과 신체, 공간과 시간이 서로를 비추고 확장하며 하나의 흐름을 이루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소개해요. 섹션 이름으로 칸을 나누는 전시가 아니라는 뜻이었어요. 이선은 칸을 그리던 손을 잠깐 멈추고, 칸과 칸 사이에 화살표를 하나씩 그었습니다.
첫 꼭지에는 이선이 오래 붙들고 있던 문장이 하나 더 있었어요. 작가에게 집은 한자리에 멈춰 있는 건물이 아니라 몸과 함께 이동하고, 기억을 품은 채 세계를 가로지르며, 나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과 이어 주는 감각의 공간이었다는 대목입니다. 이선이 그려 온 도면은 모두 땅에 붙박인 것들이었어요. 그래서 이 문장 옆에는 「집 = 움직이는 것?」이라는 메모가 물음표와 함께 붙었습니다.

이 전시는 전시실 밖에서 시작됩니다. 그 자리의 이름은 「시드 뱅크」, 곧 종자은행이에요. 그리고 이번 전시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작가의 초기 작품과 드로잉이 처음 나옵니다. 이선은 씨앗을 모아 두는 곳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설계에서도 맨 처음 손으로 그린 스케치를 버리지 않고 모아 두면, 나중에 완성된 기계가 어디서 왔는지 거꾸로 따라갈 수 있거든요.
전시실 문 앞에 서기 전에 서두르지 않는 것도 이 전시를 보는 요령이에요. 시드 뱅크를 지나 바로 3전시실로 들어가고 싶어지지만, 이 자리가 전시의 첫 장이라는 걸 알고 나면 걸음이 조금 느려집니다. 이선은 수첩의 첫 칸 앞에 칸 하나를 덧붙이고 「0 — 시드 뱅크」라고 적었어요. 0번 칸을 그려 넣은 건 이번 출장에서 처음이었습니다.
3전시실, 드로잉 200여 점과 성북동 한옥의 「작은 문」
3전시실에는 처음 공개되는 작품을 포함해 약 200여 점의 드로잉이 전시됩니다. 이선은 이 숫자를 보고 걸음 속도를 미리 정했어요. 한 점에 오래 서기보다, 방 전체의 흐름을 먼저 한 바퀴 보고 다시 마음에 걸린 자리로 돌아오기로요. 망원시장에서 루루를 처음 만난 날 썼던 「첫 바퀴는 보기만」을 미술관에도 그대로 가져온 셈입니다.
이 방의 첫 작업은 작가가 자란 성북동 한옥의 대문, 「작은 문」이에요. 전시의 첫 방이 문으로 시작한다는 게 이선에게는 반가웠습니다. 월요일 저녁 방이맛골에서 리나가 조명 아치를 그리고 옆에 적은 한 글자도 「문」이었거든요. 이선은 수첩의 3번 칸 맨 앞에 숫자 대신 그 한 글자를 먼저 적었고, 리나에게 보여 주면 알아볼지 궁금해졌어요.

그 집이 어떤 집이었는지도 오디오가이드는 들려줍니다. 헐려 나간 옛 한옥의 목재들을 모아, 창덕궁 연경당을 본떠 전통 방식 그대로 지은 집이었다고요. 다른 집에서 나온 나무로, 궁궐 안 한 채를 본보기 삼아 새로 지은 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선은 오래 고개를 끄덕였어요. 부품을 다시 쓰고 검증된 설계를 본떠 새 기계를 만드는 일과 순서가 똑같았으니까요. 이선은 3번 칸 옆에 「재사용 목재 + 본보기 설계」라고 엔지니어의 말로 적었습니다.
4전시실 「러빙/러빙」, 한지와 연필로 집을 통째로 떠낸 방법
4전시실에서는 연작 「러빙/러빙」을 만나요. 연작의 제목은 문지른다는 뜻의 rubbing과 사랑한다는 뜻의 loving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서 비롯됐습니다. 이선은 영어로 두 단어를 소리 내어 작게 따라 해 봤어요. 정말로 거의 같은 소리였고, 이선은 그 사실 하나로 이 방에 오래 머물 이유가 생겼다고 느꼈습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어린 시절 자란 성북동 한옥의 표면에 전통 한지를 밀착시킨 뒤, 건물 전체를 흑연 연필로 문질러 집 전체를 떠냈어요. 한지는 거의 1년 동안 집에 그대로 붙여 두었다고 합니다. 이선은 1년이라는 숫자 앞에서 연필을 멈췄어요. 이선은 집을 줄자와 숫자로 재지만, 이 작가는 손으로 한 면 한 면 문질러 집의 크기를 종이에 그대로 옮겼다는 것이니까요.

같은 연작에는 광주극장 사택을 다룬 작업도 있어요. 여기서는 참여자들이 눈을 가린 채 공간의 표면을 함께 더듬고 문지르며, 손끝으로 그곳에 쌓인 시간을 나눕니다. 이선은 눈을 감은 채 공간을 재는 장면을 떠올려 봤어요. 숫자도 선도 없이 손끝만으로 방 하나를 기억한다면, 자기 수첩에는 무엇이 남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연작은 뉴욕으로도 이어져요. 뉴욕 첼시에 있는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아파트는 작가가 미국에 정착한 뒤 가장 오래 머문 집이자 작업실이었고, 작가는 그곳을 색연필로 수개월 동안 손으로 문질러 떠냈습니다. 이태원에서 6년을 지냈던 집을 떠올린 이선은 그 집의 문 손잡이 높이도, 창틀의 폭도 하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어요. 수첩의 4번 칸에는 「재지 않고 문질러서 기억」이라는 메모가 남았습니다.
런던의 「완벽한 집」과 1999년부터 이어지는 「다리 프로젝트」
다음 꼭지는 「완벽한 집」이에요. 은은하고 반투명한 집의 윤곽은 작가가 2016년 런던으로 이주한 뒤 지금까지 실제로 살고 있는 집의 모습입니다. 작품 속 표본 하나하나의 위치는 매우 정교한 디지털 과정을 거쳐 정해졌고, 사물들은 어느 도시의 집에서 왔는지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돼요. 이선은 자기 물건으로 같은 단서를 만든다면 어떤 도시들이 나올지 손가락으로 세어 보다가, 시애틀과 서울에서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이선이 이 꼭지에서 오래 머문 건 「정교한 디지털 과정」이라는 말 때문이었어요. 손으로 문질러 집을 떠낸 앞 방과 달리, 여기서는 위치 하나하나를 계산으로 정했다는 거였습니다. 손과 계산, 두 가지 방식이 한 전시 안에 나란히 있다는 게 이선에게는 가장 큰 발견이었어요. 수첩의 그다음 칸에는 앞 칸의 「문질러서」 맞은편에 「계산해서」가 적혔습니다.

「다리 프로젝트」는 서도호가 199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예요. 서울과 뉴욕을 잇는 가상의 다리로, 물리적인 거리를 없애는 상상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완결을 목표로 하지 않아요. 이선은 이 마지막 문장에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끝을 정하지 않은 설계라니, 마감일과 납품 날짜로 움직여 온 엔지니어에게는 가장 낯선 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편하게 들렸어요. 시애틀과 서울 사이를 오가는 이선의 출장도 사실은 끝이 정해지지 않은 다리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이선은 수첩을 맨 뒷장까지 넘겨 리나가 적어 준 한 줄과 그 옆의 물음표를 한 번 봤습니다. 지우지는 않았어요. 다음 출장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대로였고, 이선은 그 물음표도 완결을 목표로 하지 않는 다리의 한 부분쯤으로 두기로 했습니다.
높이 15m 공간의 「Who am we」와 약 18만 개의 인물이 받치는 「바닥」
다음 꼭지의 제목은 「Who am we」예요. 졸업앨범 속 인물들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로 줄여 쓴 작업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15m에 이르는 가장 높은 전시 공간을 벽지처럼 둘러쌌습니다. 이선은 제목을 두 번 읽었어요. 나를 묻는 말과 우리를 가리키는 말이 한 문장에 붙어 있는 제목이, 엔지니어의 눈에는 일부러 맞물리지 않게 깎은 부품처럼 보였거든요.
같은 꼭지에는 「바닥」도 함께 묶여 있어요. 유리로 된 작품 위를 걷다가 그 아래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두 팔을 위로 뻗은 채 유리판을 받치고 있는 약 18만 개의 작은 PVC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선은 숫자 두 개를 수첩에 세로로 나란히 적었어요. 「15m」와 「약 18만」. 하나는 높이, 하나는 사람의 수였습니다.

구조물을 설계하는 사람에게 18만이라는 숫자는 하중의 숫자로 먼저 읽혀요. 유리판 하나를 그 많은 작은 팔이 나눠 받친다는 게, 이선에게는 계산서보다 먼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혼자 받치면 무거운 것을 여럿이 나눠 들면 버틸 수 있다는 것, 이선은 그 그림이 한 꼭지에 나란히 묶인 제목의 we와도 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방에서는 수첩을 오래 들여다보기보다 천천히 걸으며 위와 아래를 번갈아 보는 시간을 남겨 두세요.
「둥지/들」부터 「사랑의 기억」까지, 집과 몸이 이어지는 나머지 꼭지
「둥지/들」은 통로를 걸으며 보는 작업이에요. 통로를 걷다 보면 작품 너머로 미술관 풍경이 비쳐 보이는데, 여기에는 오늘날 전통 한복, 특히 여름 한복을 만들 때 널리 쓰는 반투명 폴리에스터가 쓰였습니다. 제목에도 장치가 있어요. 둥지의 복수형은 Nests인데, 작가는 s 앞에 빗금을 그어 둘 사이를 구분해 두었습니다. 이선은 빗금 하나로 하나와 여럿을 동시에 가리키는 방식이, 도면의 치수선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뒤의 꼭지들도 모두 집과 거주에 관한 이야기예요. 영국 런던의 공공주택 단지 로빈 후드 가든을 소재로 만든 파노라마 영상은 하늘의 거리, 곧 Street in the Sky라는 개념을 다룹니다. 높은 받침대 위에 당당히 서 있어야 할 동상이 거꾸로 뒤집힌 채 투명한 받침대 안에 매달린 「뒤집힌 기념비」도 있어요. 이선은 공동주택의 복도를 거리로 본다는 생각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기가 묵는 호텔 복도를 잠깐 떠올렸습니다.
마지막 꼭지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사랑의 기억」이에요. 작가가 자신의 코트 안쪽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 낸 주머니를 다시 달고, 그 안에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물을 넣어 둔 작품입니다. 집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첫 꼭지의 문장이 마지막에 코트 한 벌로 돌아오는 셈이었어요. 이선은 물품보관소에 맡겨 둔 자기 코트를 떠올리고, 그 안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는 수첩을 생각했습니다.

밤 9시 전에 로비로, 이선이 보낸 메시지와 수첩 맨 뒷장의 물음표
열두 꼭지를 다 걷고 1층 로비로 올라왔을 때는 8시가 조금 넘어 있었어요. 야간개장은 9시까지라, 마지막 꼭지까지 천천히 보려면 6시에 맞춰 들어가 세 시간을 다 쓰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이선은 코트를 찾기 전에 로비 한쪽에서 수첩을 펼쳤어요. 0번 시드 뱅크부터 마지막 코트까지, 칸마다 숫자 하나와 이름 하나가 함께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선의 도면에 이름이 숫자만큼 많은 건 처음이었어요.
이선은 그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리나에게 보냈어요. “칸마다 이름을 붙여 봤어요, 월요일에 배운 방식이에요.” 답은 금방 왔는데, 리나는 칸 하나에 「0」이 붙어 있는 걸 알아보고, 0번 칸은 처음 본다고 적었어요. 이선은 전시가 전시실 밖에서 시작해서 그랬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리나의 메시지는 늘 짧았지만, 짧은 만큼 정확했어요.
루루와 마야가 있는 대화방에도 한 줄을 남겼습니다. 저녁은 먹었느냐는 루루의 물음에 이선은 아직이라고 답하고, 오늘은 미술관에서 숫자를 너무 많이 적어서 배가 고프다고 덧붙였어요. 마야는 사진 대신 도면만 보낸 이선에게, 구도는 칸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게 마음에 든다고 답했습니다. 셋의 대화는 늘 그렇듯 짧고 가볍게 끝났어요.
팔에 걸고 다니던 코트를 다시 입은 이선은 안주머니에 수첩을 넣다가 잠깐 손을 멈췄어요. 방금 본 마지막 작품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엔지니어의 코트 안주머니에도 이미 집 같은 것이 하나 들어 있었던 셈이니까요. 출장지의 호텔 방을 오가며 늘 들고 다닌 수첩에는 망원시장과 석촌호수, 노들섬과 방이맛골, 그리고 오늘의 지하1층이 차례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온 이선은 수첩 맨 뒷장을 한 번 더 펼쳤어요. 「종로3가 — 서순라길 — 아침」 옆의 물음표는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이선은 그 물음표를 지우지 않고, 그 아래에 아주 작게 「다리 — 완결 X」라는 한 줄을 더했어요. 다음 출장이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끝을 정하지 않은 다리도 계속 이어지는 다리라는 걸 오늘 배웠으니까요. 출장 마지막 주의 수요일은 그렇게 숫자보다 이름이 조금 더 많은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Common Mistakes — 자주 하는 실수
평일 저녁 6시 넘어 찾아가기
월·화·목·금·일요일은 18:00에 닫아요. 저녁에 가려면 21:00까지 여는 수요일이나 토요일로 잡으세요.
야간 무료 시간을 놓치고 낮에만 생각하기
수·토요일 18:00~21:00 야간개장 시간과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요.
12월 1일에 가기
2026년 12월 1일(화)은 임시 휴관이에요.
1층에서 전시실을 찾기
「서도호」는 지하1층 3·4·5전시실이에요. 내려가서 오른쪽 2전시실을 기준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 3·4·5전시실이 이어져요.
전시실 문부터 들어가기
전시는 전시실 밖 「시드 뱅크」에서 시작해요.
야간개장에 8시 넘어 도착하기
9시에 닫으니, 끝까지 천천히 보려면 6시에 맞춰 들어가는 편이 좋아요.
FAQ — 자주 묻는 질문
어느 역 어느 출구로 가요?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500m 정도 직진하면 동십자각이 보이고, 우측으로 꺾어 다시 500m를 직진하면 오른편에 미술관이 있어요.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로도 갈 수 있어요.
관람료는 얼마예요?
「서도호」 관람료는 8,000원이에요. 수·토요일 18:00~21:00 야간개장 시간과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무료예요.
전시는 언제까지 해요?
2026년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 지하1층 3·4·5전시실에서 열려요.
쉬는 날은 언제예요?
1월 1일, 설날, 추석에 쉬고, 2026년 12월 1일(화)은 임시 휴관이에요.
무료 대상이 있나요?
서울관 관람 안내에는 만 24세 이하, 만 65세 이상, 대학생(학부생), 장애인 및 동행보호자, 문화누리카드 소지자가 무료 대상으로 적혀 있어요.
짐은 어디에 맡겨요?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물품보관소와 화장실이 보여요.
문의는 어디로 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02-3701-9500이에요.
Recap — 출발 전 30초
-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 오른쪽 500m → 동십자각에서 우측 500m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삼청로 30)
- 「서도호」 2026.8.27 ~ 2027.2.9, 지하1층 3·4·5전시실, 관람료 8,000원
- 수·토 18:00~21:00 야간개장 무료,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무료
- 2026년 12월 1일(화) 임시 휴관
- 전시는 전시실 밖 「시드 뱅크」에서 시작, 지하1층은 2전시실 기준 시계 반대 방향으로 3·4·5
참고 자료
- 국립현대미술관 — 전시 「서도호」전시 기간 2026년 8월 27일~2027년 2월 9일 · 지하1층 3·4·5전시실 · 관람료 8,000원 · 전시 소개(이주와 거주, 개인과 공동체, 공간·기억·정체성)확인 2026-10-27
- 국립현대미술관 — 관람·참여 서울관람 시간(월·화·목·금·일 10:00~18:00, 수·토 10:00~21:00) · 수·토 18:00~21:00 야간개장 무료 ·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무료 · 휴관일(1월 1일·설날·추석)과 임시 휴관 12월 1일(화) · 무료·할인 대상 · 주소와 문의 · 층별 안내(로비·마당 이름·지하1층 전시실 배치·안내데스크·화장실·물품보관소) · 오시는 길(안국역 1번·경복궁역 4번·광화문역 2번 출구)확인 2026-10-27
- 국립현대미술관 — 「서도호」 오디오가이드전시 구성 방식과 「집」 · 처음 공개되는 초기 작업 · 시드 뱅크 · 성북동 한옥과 「작은 문」, 3전시실 드로잉 200여 점 · 「러빙/러빙」(서울·광주극장 사택·뉴욕) · 「완벽한 집」 · 「다리 프로젝트」 · 「Who am we」와 「바닥」 · 「둥지/들」 · 로빈 후드 가든 영상 · 「뒤집힌 기념비」 · 「사랑의 기억」확인 2026-10-27
- 국립현대미술관 — 연혁2013년 11월, 옛 국군기무사령부 자리인 종로구 소격동에 전시실·프로젝트갤러리·영화관·다목적홀을 갖춘 서울관 개관확인 2026-10-27
AI 캐릭터와 함께 걷는 서울 이야기예요. 장소 정보는 공개 자료로 확인했고, 사진은 AI로 만든 연출 이미지예요. AI 활용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