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 JEONGDONG
정동길, 돌담 끝에서 붉은 벽돌 길로
미술관 앞 모퉁이에서 정동길로 들어서면 길이 한 번 더 성격을 바꾼다. 담이 아니라 붉은 벽돌이고, 나무는 은행나무다.

가는 길
도보 거리·시간은 지도 경로 계산값이고, 출구 번호는 확인일 기준입니다.
첫 편에서 엘레나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고, 두 번째 편에서는 그 끝의 미술관을 보았다. 오늘은 미술관 앞 모퉁이에서 반대쪽으로 몸을 돌린다. 담이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 정동길. 서울시 관광 안내는 이 길과 돌담길을 묶어 도심의 대표적인 산책길이라고 부른다. 오늘 엘레나는 그 길 한 줄만 걷는다. 미술관 앞에서 정동제일교회 앞까지 4분, 거기서 길 끝의 정동역사공원 입구까지 5분이라고 지도는 말한다.
화면에서 정동길은 언제나 가을이었다. 노란 은행잎이 길을 덮고, 두 사람이 그 위를 천천히 걷고, 붉은 벽돌 건물이 뒤에 서 있는 장면. 제목은 달라도 색은 같았다. 노랑과 붉은 갈색. 엘레나는 그 색을 기억하고 있다. 다만 오늘은 9월이고, 잎은 아직 초록이다. 화면의 계절과 발의 계절이 처음부터 어긋난 채로 걷기 시작한다.
그래서 오늘의 물음은 색이 아니라 해(年)다. 화면에서 이 길은 한 장면, 한 계절이었다. 걸어 보면 건물마다 지어진 해가 다르다는 것을 안내판과 국가유산 기록이 알려 준다. 엘레나는 오늘 그 해들을 순서 없이, 걷다가 만나는 대로 세어 보기로 한다. 백 년이 한 줄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
미술관 앞에서 — 담이 끝나고 벽돌이 시작되는 길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Visit Seoul)는 정동길과 덕수궁 돌담길을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산책길로 소개하며, 사람 중심의 일방통행 길로 지정되어 있고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져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며 차도와 인도의 높이를 맞췄다고 설명한다. 「정동」이라는 이름은 태조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의 묘 「정릉」에서 왔다고 적혀 있다.
미술관 앞 모퉁이에서 북쪽을 보면 길이 한 번 휘어져 들어간다. 지난 편까지 오른쪽에 있던 궁의 담은 여기서 끝난다. 대신 양쪽으로 가로수가 서고, 그 뒤로 붉은 벽돌이 보이기 시작한다. 엘레나는 몇 걸음 만에 알아차린다. 이 길의 색은 담의 회색이 아니라 벽돌의 붉은 갈색이구나. 지도에서 찾기

길은 좁지 않다. 차선이 둘이고 가운데에 노란 선이 있다. 그런데 걷는 사람이 길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서울시 관광 안내에는 이 길이 사람 중심의 일방통행 길로 지정돼 있고,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졌으며, 차도와 인도의 높이를 맞췄다고 적혀 있다. 차도와 보도의 경계는 높이 차가 크지 않게 이어진다. 관광 안내에 적힌 「높이를 맞춘 길」이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 큰 글씨가 칠해져 있다. 「정동길」, 그리고 자전거가 우선인 길이라는 표시. 길이 스스로 이름을 말하는 셈이다. 화면에서는 길 이름이 보인 적이 없다. 카메라는 늘 잎과 얼굴을 찍었지, 바닥을 찍지 않았다. 엘레나는 그 글씨 위에 잠깐 서서 이름을 읽는다. 이 길을 걷는 첫 번째 순서는 이름을 읽는 것이라고, 노트에 적는다.

양쪽 보도는 붉은 갈색 블록이다. 돌담길에서는 담 쪽 보도만 붉었는데, 여기서는 양쪽이 다 붉다. 그리고 가로수는 은행나무다. 잎의 모양이 부채꼴이라 초록이어도 은행나무인 것을 알 수 있다. 화면의 노란색이 어디서 오는지, 초록 잎을 보고 먼저 짐작한다. 아직 색이 오기 전의 장면을 보는 셈이다.
왼쪽으로 붉은 벽돌 벽이 길게 이어지고, 벽 위로 나무가 보인다. 벽에 네 개의 기둥이 서 있다. 안내에 따르면 여기는 정동극장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를 복원한다는 이념으로 1995년에 문을 열었고, 극장을 지하에 두고 그 위에 야외 마당을 두었다고 적혀 있다. 엘레나는 벽 앞에서 첫 번째 해를 적는다. 1995.

화면에서 붉은 벽돌은 다 같은 붉은 벽돌이었다. 오래된 것과 새 것이 한 장면 안에서 구분되지 않았다. 엘레나는 극장의 벽돌을 가까이서 본다. 뒤에서 만날 교회 외벽보다 색이 고르고 모서리가 또렷해 보인다. 건물의 연도만 놓고 보면 오늘 만날 네 곳 가운데 가장 늦다. 1995. 나머지는 조금 더 걸어야 나온다.
돌담길이 조용한 쪽이었다면 정동길은 조금 더 소리가 있다. 버스 정류장이 있고, 횡단보도가 있고, 학교와 여러 시설이 이어진다. 화면보다 생활의 움직임이 많은 길이다. 엘레나는 그것이 싫지 않다. 화면의 길은 늘 비어 있었지만, 걷는 길에는 사람이 있는 편이 맞다. 그래야 길이 길이다.

정동제일교회 앞 — 1898년의 붉은 벽돌
정동제일교회는 국가유산포털에 「서울 정동교회」로 등재된 사적(1977년 11월 22일 지정)으로, 대한제국 광무 2년(1898)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벽돌을 쌓고 곳곳에 아치형 창을 낸 단순화된 고딕 양식이며, 본래 십자형이던 건물을 1926년 양쪽 날개를 넓혀 지금의 네모난 모양이 됐다.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에는 조선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 있다고 설명된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을 본다. 붉은 벽돌 건물이 낮은 검은 철제 울타리 뒤에 서 있다. 창은 아치형이다. 벽돌은 극장의 것과 색이 다르다. 더 어둡고 고르지 않게 보인다. 엘레나는 울타리 앞에 선다. 여기가 정동제일교회다. 지도에서 찾기

국가유산 기록에는 이 건물이 대한제국 광무 2년, 1898년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 건물이라고 적혀 있다. 벽돌을 쌓고 곳곳에 아치형 창을 낸 단순화된 고딕 양식. 엘레나는 창을 하나씩 센다. 아치가 반복된다. 화면에서 본 교회 장면의 창도 이런 모양이었는지 떠올려 보지만, 화면은 창을 셀 만큼 오래 머물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본래 십자형이던 건물을 1926년에 양쪽 날개를 넓혀 지금의 네모난 모양이 됐고, 원래 건물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밖에서 보면 어디까지가 1898년이고 어디부터가 1926년인지 엘레나는 알 수 없다. 다만 하나의 건물에 두 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안 채로 본다. 그것만으로도 벽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기단을 본다. 벽돌 아래,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부분. 기록은 여기에 조선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 있다고 적었다. 서양식 벽돌 건물 아래에 조선의 돌 솜씨가 있다는 문장을 엘레나는 두 번 읽는다. 화면에서는 건물이 통째로 「옛날 건물」이었다. 기록을 읽고 나면 위의 벽돌과 아래의 돌을 따로 보게 된다.
엘레나가 기억하는 화면 속 교회는 대개 결혼식이거나 누군가 혼자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안에서 찍은 장면. 밖에서, 울타리 너머로, 아치 창을 세는 장면은 없었다. 엘레나는 오늘 그 장면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예배당은 다른 날의 일이고, 오늘의 자리는 길이다.
울타리는 낮다. 손을 얹으면 얹을 수 있는 높이다. 엘레나는 얹지 않는다. 돌담길에서 담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다. 오래 보는 편이 이 벽돌과 더 잘 어울린다. 두 번째 해를 적는다. 1898. 그리고 괄호 안에 1926.

횡단보도를 건넌다. 길 건너에서 교회를 한 번 더 본다. 붉은 벽돌 위로 은행나무가 겹친다. 이 각도가 화면에 가장 가까운 각도다. 잎이 노랗다면 그대로 그 장면이 될 것이다. 지금은 초록이라 장면이 되다 만다. 엘레나는 되다 만 장면이 오히려 좋다. 완성된 장면은 화면에 이미 있으니까.
교회 앞에서 뒤를 돌아본다. 방금 올라온 길의 흐름이 한 번에 이어져 보인다. 담에서 미술관, 극장, 교회로 바뀌어 온 순서를 노트에 적는다. 회색, 흰색, 1995년의 벽돌, 1898년의 벽돌. 길이 색을 바꾸는 순서다.

이화여고 앞 — 담 위의 기와, 담 뒤의 붉은 벽돌
정동길 26의 붉은 벽돌 건물은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2002년 2월 28일 등록)이다. 1915년 미국인 사라 J. 심슨이 위탁한 기금으로 세운 이화여고 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6·25 때 붕괴되어 1960년대 초 복구하면서 남쪽 외관은 처음 모습으로 복원했다. 현재는 이화박물관으로 쓰인다.
교회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에 담이 나온다. 돌을 쌓은 낮은 담인데, 위에 기와가 얹혀 있다. 돌담길의 담을 작게 줄여 놓은 것 같다. 그 담 뒤로 붉은 벽돌 건물이 솟아 있다. 창틀은 희고, 3층이다. 안내에 따르면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심슨기념관이다. 지도에서 찾기

국가유산 기록에는 이 건물이 1915년에 미국인 사라 J. 심슨이 위탁한 기금으로 세워진, 이화여고 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적혀 있다. 6·25 때 붕괴되어 1960년대 초에 복구했고, 남쪽 외관은 처음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화박물관으로 쓰인다. 엘레나는 세 번째 해를 적는다. 1915.
여기서 엘레나는 걸음을 멈추고 노트를 본다. 1995, 1898, 1915. 붉은 벽돌 건물 셋에 해가 셋이다. 화면에서 붉은 벽돌은 하나의 색이었는데, 이 길에서는 색이 하나여도 해가 다르다. 백 년 가까운 차이가 같은 색 속에 들어 있다. 이것이 오늘 이 길에서 가장 마음에 남을 문장이 될 것 같다.
담과 벽돌 건물 사이에 나무가 있다. 담 위 기와와 벽돌 건물의 흰 창틀 사이로 초록이 들어온다. 한 장면에 검은 기와, 서양식 벽돌, 그리고 나무. 발로 서면 셋이 한꺼번에 있다. 엘레나는 이 「한꺼번에」를 좋아한다.

길 건너편은 다르다. 돌을 쌓은 옹벽이 높게 서 있고, 그 위에 철제 난간, 난간 뒤에 나무. 왼쪽이 담이라면 오른쪽은 벽이다. 길이 두 종류의 돌 사이를 지나간다. 담은 넘어다볼 수 있고, 벽은 올려다봐야 한다. 엘레나는 고개가 올라가는 만큼으로 그 차이를 느낀다.

은행나무는 여기서도 양쪽에 있다. 잎이 위에서 만나지는 않는다. 돌담길의 캐노피 같은 터널은 없고, 대신 하늘이 더 보인다. 화면에서는 노란 잎이 길을 가득 채웠다. 오늘은 초록 잎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엘레나는 그 차이를 오늘의 정동길로 받아들인다.
담 뒤의 건물은 학교라서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기록에는 박물관으로 쓰인다고 적혀 있다. 엘레나는 담 밖에서 창을 세고, 기와를 세고, 다시 걷는다.

길 끝의 흰 탑 — 1890년, 그리고 다음 편의 자리
정동역사공원 안의 흰 탑은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의 남은 부분으로, 사적(1977년 11월 22일 지정)이다. 고종 27년(1890)에 지은 르네상스풍 2층 벽돌 건물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심하게 파괴되어 탑과 지하 2층만 남았고 1973년에 복구됐다. 1896년 2월부터 1897년 2월까지 고종이 세자와 함께 피신해 있던 곳이다.
이화여고를 지나면 길이 한 번 더 휜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노면의 색이 붉게 바뀐다. 왼쪽의 회색 금속 패널 건물과 오른쪽의 나무 울타리가 가까워지며 마지막 구간이 한층 좁게 보인다. 정동길의 마지막 구간이다. 지도에서 찾기

오르막 끝에 공원 입구가 있다. 안내에 따르면 정동공원, 정동역사공원이라고도 부른다. 옛 러시아공사관 부지였고, 지금은 하얀 탑만 남아 있다고 서울시 관광 안내는 적고 있다. 길에서는 탑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가리고, 언덕이 가린다. 엘레나는 입구에서 한 번 멈춘다.
국가유산 기록에 따르면 그 탑은 고종 27년, 1890년에 지은 르네상스풍 2층 벽돌 건물의 남은 부분이다. 한국전쟁으로 심하게 파괴되어 탑과 지하 2층만 남았고 1973년에 복구됐다. 그리고 1896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고종이 세자와 함께 피신해 있던 곳이라고 적혀 있다. 엘레나는 네 번째 해를 적는다. 1890. 오늘 적은 네 해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해다.

가장 오래된 해가 길의 가장 끝에 있다. 그리고 그 건물은 붉은 벽돌이 아니라 흰 탑으로 남았다. 엘레나는 노트를 다시 본다. 노트의 해를 작은 순서대로 다시 놓으면 1890 — 1898 — 1915 — 1995. 하지만 걸으며 만난 순서는 1995 — 1898 — 1915 — 1890이다. 연표와 걷기의 순서는 다르다.
공원에서 덕수궁 돌담길 쪽으로 「고종의 길」이 이어진다고 안내에 적혀 있다. 2018년에 정식 개방됐다고 한다. 엘레나는 오늘 그 길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 길은 1편의 담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오늘 돌아가는 길은 따로 있다. 다만 지금 공원에서 돌담길 쪽으로 이어지는 복원 동선이 있다는 것만 노트에 적는다.
정동제일교회 앞에서 정동전망대까지 도보 약 340미터, 4분이라고 지도는 말한다.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에 있는 전망대다. 거기서는 오늘 걸은 길과 지난 편의 담과 미술관이 한 번에 내려다보인다고 안내에 적혀 있다. 그것이 다음 편의 자리다. 세 편을 걸은 길을 한 번에 내려다보는 자리.
엘레나는 공원 입구의 나무 아래서 노트를 덮는다. 오늘 적은 해는 넷이다. 화면에서 한 장면이던 길이 네 개의 해로 갈라졌다. 갈라진 것이 나쁜 게 아니다. 화면은 한 장면을 주고, 길은 네 개의 해를 준다. 둘 다 이 길이다.
엘레나가 다음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건 「해를 세며 걷기」다. 바닥의 길 이름을 읽고, 1995년 극장의 벽돌과 1898년 교회의 벽돌을 가까이서 견주고, 교회 앞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보고, 학교 담 위의 기와와 담 뒤의 벽돌을 한 장면에 넣어 보고, 길 끝의 오르막에서 흰 탑이 있는 쪽을 향해 잠깐 서 볼 것. 노란 잎이 없어도 이 길은 충분히 한 편이 된다.
그리고 하나 더. 교회 안, 박물관 안, 극장 안은 각각 다른 날의 일로 남겨 두는 편이 좋다. 이 편이 적을 수 있는 건 길에서 보이는 것뿐이고, 길에서 보이는 것만으로도 백 년이 넘는다.

(※ 이 글의 사진은 AI로 제작한 연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접 가려면
미술관 앞 모퉁이에서 정동길을 따라 정동제일교회 앞을 지나 정동역사공원 입구까지 걷고, 같은 길로 돌아오거나 정동전망대로 이어 가는 데 30분에서 50분을 잡아 보세요. 도보 시간은 지도 경로 계산값이고, 건물 앞에서 멈추는 시간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순서를 보여 주는 개념도 · 축척·방위·실제 길 모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알아 두면 좋은 이야기3
TMAP확인 2026.09.18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정동길을 따라 정동제일교회 앞까지 도보 약 300m, 4분
TMAP확인 2026.09.18
정동제일교회 앞에서 정동길을 따라 정동역사공원 입구까지 도보 약 360m, 5분
확인 2026.09.18
정동길 북쪽 끝의 정동공원(정동역사공원, 정동길 21-18)은 옛 러시아공사관 부지로, 지금은 하얀 탑만 남아 있다. 공원에서 덕수궁 돌담길 쪽으로 이어지는 「고종의 길」은 2018년에 정식 개방되었다고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는 적고 있다.
- 정동길은 연중 걸을 수 있는 공공 도로이고 요금이 없습니다. 다만 차와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라 보도로 걷고, 바닥 글씨나 건물을 찍을 때 차도에 오래 서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 들어갈 계획이라면 예배·관람·공연 시간은 각 기관의 공식 안내에서 확인하세요. 학교 구내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 정동역사공원의 흰 탑(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사적)은 공원 안에 있습니다. 「고종의 길」은 공원에서 덕수궁 돌담길 쪽으로 이어집니다.
- 가을 은행잎 시기는 해마다 다르고 이 글은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잎이 없어도 길은 걸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