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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창덕궁 전각 코스 끝에 선 단청 없는 집

창덕궁 전각 관람 코스는 낙선재에서 끝난다. 1847년 헌종 때 지은 이 집은 궁궐 안에 있으면서도 단청을 칠하지 않고 사대부 집의 형식으로 지었고, 궁궐 안에서 이런 형식으로 지은 건물은 낙선재와 연경당 둘뿐이다.

넓은 흙 마당 건너에 선 단청 없는 목조 한옥, 왼쪽 끝 한 칸이 높은 주춧돌 위로 나와 있다, 사람 없음. 편집 이미지.

첫 편에서 리나는 옆문 금호문으로 들어가 인정전 앞마당까지 걸었다. 오늘은 그다음이다. 인정전에서 돌아 나가지 않고 전각 관람 코스를 끝까지 따라가면 닿는 집, 낙선재.

엘레나에게 궁궐은 화면으로 먼저 온 곳이다. 화면 속 궁궐에는 늘 색이 많았다. 붉은 기둥, 처마 밑을 빽빽하게 채운 초록과 주황의 무늬. 정동에서 덕수궁 담을 따라 다섯 번을 걸을 때도, 엘레나가 머릿속에 그린 궁은 그런 색이었다.

그런데 창덕궁 전각 관람 코스의 마지막 집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읽었다. 엘레나는 수첩 첫 줄에 적는다. 「색이 빠지면 무엇이 남나.」

코스의 마지막 문, 장락문

궁능유적본부 관람코스: 창덕궁 전각관람은 돈화문 → 금천교 → 인정전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낙선재 순서이고, 낙선재가 마지막이다(후원 관람은 별도 코스). 국가유산청은 낙선재가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있다고 적는다.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은 보수공사 중이라, 지금 입구는 서쪽의 금호문이다. 엘레나도 그 문으로 들어간다. 궁능유적본부가 안내하는 전각 관람 순서는 돈화문, 금천교,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그리고 낙선재. 낙선재가 마지막이다. 지도에서 찾기

인정전 앞을 지나 동쪽으로 간다. 리나가 올려다본 인정전의 처마 밑은 색으로 가득했다. 엘레나는 코스를 따라 걸으면서, 그 색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보기로 한다.

국가유산청은 낙선재가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있다고 적는다. 궁의 동쪽 끝이다. 낙선재로 들어가는 문은 남쪽 행각에 난 장락문이다. 행각은 마당을 둘러싼 긴 건물이고, 장락문은 그 행각의 정문이다.

기와를 얹은 긴 행각에 난 나무 대문, 현판은 판독할 수 없음, 사람 없음. 편집 이미지.
낙선재 남쪽 행각의 정문, 장락문

엘레나는 문 앞에서 한 번 멈춘다. 문 너머로 넓은 마당이 보이고, 마당 건너에 집이 한 채 서 있다. 처마 밑이 나무 빛이다.

캐멀색 재킷을 입고 한옥 대문을 지나며 마당 쪽을 바라보는 젊은 여성의 옆모습. 편집 이미지.
장락문을 지나며 마당 쪽을 보는 엘레나

단청을 하지 않은 집

국가유산청 보물 「창덕궁 낙선재」 설명: 헌종 13년(1847)에 지었다(궁능유적본부 연표: 낙선당 터). 원래 왕의 연침 공간으로 지었고, 이듬해 빈의 처소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고쳐 지었다. 궁궐 안에 사대부 주택 형식으로 지은 건물은 낙선재와 연경당뿐이다. 궁궐 침전과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았다. 남행각의 정문 장락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에 정면 6칸·측면 2칸으로 서 있고, 맨 왼쪽의 앞으로 나온 1칸이 누마루다. 여러 문양의 창호가 달렸고, 누마루와 그 뒤 온돌방 사이의 만월문(둥근 문)을 「단연 돋보이는 백미」로 꼽는다.

낙선재는 헌종 13년, 1847년에 지었다. 궁능유적본부 연표는 낙선당이 있던 터라고 적는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원래 왕이 머물고 잠드는 공간으로 지었고, 이듬해 옆에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고쳐 지었다. 설명에는 한 줄이 더 있다. 궁궐 안에 사대부 집의 형식으로 지은 건물은 낙선재와 연경당, 둘뿐이라는 것. 지도에서 찾기

색을 칠하지 않은 나무 기둥과 흰 벽, 격자 창이 이어지는 한옥의 정면, 사람 없음. 편집 이미지.
정면 6칸의 낙선재 — 색 대신 나무 빛과 흰 벽

그래서 단청이 없다. 궁궐의 침전들과 달리 이 집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 정면 6칸, 측면 2칸. 맨 왼쪽 한 칸이 앞으로 나와 기둥 모양의 주춧돌 위에 올라앉은 누마루다. 엘레나는 마당에서 그 누마루를 오래 본다. 색이 없으니 나무의 결과 흰 벽, 그리고 돌 위에 얹힌 높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둥 모양의 높은 돌 주춧돌 위에 올라앉은 한옥 누마루와 그 아래의 조각 장식, 사람 없음. 편집 이미지.
기둥 모양 주춧돌 위에 올라앉은 왼쪽 누마루

색이 빠진 자리에는 무늬가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 집에 여러 문양의 창호가 달렸다고 적는다. 문과 창의 살이 한 가지 모양이 아니다. 사대부 집의 형식이라고 해서 평범한 집이라는 뜻은 아니다. 설명도 궁궐 침전의 형식이 더해져 다른 곳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장식이 있다고 적는다. 엘레나는 수첩에 적는다. 「색 대신 무늬.」

여러 모양으로 짠 한옥 창살과 창호지의 근접, 사람 없음. 편집 이미지.
여러 문양으로 짠 낙선재 창호의 살

설명이 「단연 돋보이는 백미」로 꼽는 것은 둥근 문이다. 누마루와 그 뒤 온돌방 사이에 난 만월문. 방 안쪽의 문이라, 오늘 엘레나는 그 문을 설명으로만 안다. 화면이었다면 카메라가 방 안으로 들어가 그 둥근 문을 액자처럼 썼을 것이다. 걸어서 온 사람은 문 밖에서, 설명 한 줄로 그 문을 알게 된다.

열린 격자 문 너머로 보이는 방 안의 둥근 문과 그 너머의 마루, 사람 없음. 편집 이미지.
누마루와 방 사이의 만월문 — 국가유산청 설명을 바탕으로 한 재구성

1989년까지 사람이 살던 집

국가유산청 설명: 낙선재는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소로 쓰였고, 그 뒤 조선왕조의 마지막 영친왕 이은이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으며, 1966년부터 1989년까지는 이방자 여사가 기거했다. 궁능유적본부는 낙선재 권역을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순정황후, 의민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덕혜옹주)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라고 적는다. 석복헌과 수강재는 상당 부분이 변형되어 있다.

이 집의 시간은 1847년에서 멈추지 않았다. 국가유산청은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이 이곳을 집무소로 썼다고 적는다. 그리고 설명은 20세기 후반의 연도로 이어진다. 지도에서 찾기

흙 마당에 서서 한옥의 높은 누마루를 올려다보는 캐멀색 재킷 차림의 젊은 여성. 편집 이미지.
마당에서 누마루를 올려다보는 엘레나

낙선재의 오른쪽으로 석복헌과 수강재가 이어진다. 낙선재를 지은 이듬해 빈의 처소로 지은 석복헌, 그리고 그때 고쳐 지은 수강재. 국가유산청은 낙선재가 옛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한 데 비해, 석복헌과 수강재는 상당 부분이 바뀌었다고 적는다.

행각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당과 단청 없는 한옥 건물, 사람 없음. 편집 이미지.
낙선재 오른쪽으로 이어진 석복헌

조선왕조의 마지막 영친왕 이은이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이곳에 살았고, 이방자 여사는 1966년부터 1989년까지 이곳에서 지냈다. 궁능유적본부는 낙선재 권역을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 순정황후와 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가 생활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라고 적는다. 엘레나는 마지막 연도를 수첩에 옮겨 적는다. 1989. 엘레나가 태어나기 10년쯤 전이다.

한옥 행각의 그늘에 서서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적는 젊은 여성의 허리 위. 편집 이미지.
행각 그늘에서 마지막 연도를 옮겨 적는 엘레나

설명에 따르면 뒤편에는 계단처럼 쌓은 꽃밭인 화계가 있고, 그 위 꽃담 너머로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있다. 궁능유적본부가 올해 봄 이 일대를 둘러보는 특별 해설을 열면서 「평소 관람객의 접근이 제한되었던」 곳이라고 소개한 자리다. 엘레나는 뒤뜰로 가지 않는다. 마당에서 지붕 너머를 한 번 올려다보고 돌아선다.

계단식 꽃밭 위로 무늬를 넣은 담과 둥근 문, 그 너머의 나무, 사람 없음. 편집 이미지.
2026년 봄 공지에서 「평소 관람객의 접근이 제한되었던」 곳으로 소개된 뒤편 화계와 꽃담 —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재구성

화면 속 궁궐은 색으로 기억된다. 창덕궁 전각 코스의 마지막 집에는 그 단청의 색이 없다. 대신 창살의 무늬와 방 안의 둥근 문, 그리고 1989년까지 이어진 생활의 시간이 남았다. 엘레나는 첫 줄의 물음 옆에 답을 적는다. 「무늬, 그리고 시간.」

엘레나의 추천은 두 가지다. 인정전에서 돌아 나가지 말고 코스 끝까지 걸을 것. 그리고 이 집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면 금·토·일 오후 2시 30분, 낙선재 심화해설 시간에 맞춰 올 것. 창덕궁은 월요일에 쉰다.

한옥 대문 쪽에서 마당을 돌아보는 젊은 여성의 허리 위. 편집 이미지.
장락문 쪽에서 마당을 돌아보는 엘레나

(※ 이 글의 사진은 AI로 제작한 연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접 가려면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창덕궁 금호문으로 들어가, 전각 관람 코스를 따라 낙선재 마당까지 걷는 코스입니다. 390m·5분은 안국역 3번 출구에서 금호문까지의 지도 경로 계산값이고, 궁능유적본부 안내는 걸어서 5분이라고 적습니다.

오늘의 이동 순서

순서를 보여 주는 개념도 · 축척·방위·실제 길 모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1. 금호문 → 인정전 — 돈화문 보수공사 기간에는 금호문이 입구입니다. 인정전 앞마당까지의 길은 이 이슈의 첫 편에서 다뤘습니다. 지도에서 찾기
  2.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궁능유적본부 전각 관람 코스의 순서입니다. 지도에서 찾기
  3. 장락문 · 낙선재 마당 — 코스의 마지막. 단청 없는 낙선재와 그 오른쪽의 석복헌·수강재. 뒤편 화계 일대는 2026년 봄 공지에서 「평소 관람객의 접근이 제한되었던」 곳으로 소개됐습니다. 지도에서 찾기
방문 정보

가는 길

TMAP확인 2026.09.23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창덕궁 금호문(돈화문 보수 기간의 임시 입구)까지 지도 경로로 390m·5분(TMAP 보행자). 궁능유적본부 안내는 안국역 3번 출구 도보 5분, 1·3·5호선 종로3가역 7번 출구 도보 10분이라고 적는다. 주소 종로구 율곡로 99, 주차시설은 없다.

운영 시간·요금

궁능유적본부 관람시간확인 2026.09.23

창덕궁은 매주 월요일 휴궁(공휴일·대체공휴일과 겹치면 열고 그다음 첫 비공휴일에 쉰다). 2~5월·9~10월 09:00~18:00(입장 마감 17:00), 6~8월 09:00~18:30(17:30), 11~1월 09:00~17:30(16:30).

궁능유적본부 관람요금확인 2026.09.24

창덕궁 전각관람 대인 3,000원(내국인 만25~64세, 외국인 만19~64세). 후원관람은 경로·대인 5,000원, 소인(만7~18세) 2,500원이며 전각관람권도 함께 사야 한다. 4대궁과 종묘를 묶은 궁궐 통합관람권 6,000원은 후원을 포함하지 않는다. 전각 일반관람의 무료 대상에는 만18세 이하·만65세 이상 외국인과 한복 착용자가 포함된다. 다만 후원 무료 대상은 만6세 이하·유공자(내국인)·장애인(내국인)이다.

궁능유적본부 해설안내확인 2026.09.23

창덕궁 심화해설 「창덕궁 깊이보기」 가운데 낙선재 해설은 매주 금·토·일 14:30에 자원봉사단체(금·토 우리궁궐지킴이, 일 궁궐길라잡이)가 진행한다. 해설 시간·횟수·동선은 기관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알아 두면 좋은 이야기5

확인 2026.09.23

궁능유적본부는 2024년 11월 11일부터 창덕궁 정문 돈화문의 보수공사를 추진하며, 공사 기간 임시 출입문을 입구 금호문, 출구 금호문 옆 소방문으로 바꿨다고 공지했다. 2026년 9월 23일 확인 시 궁능유적본부 안내에서도 창덕궁 입구를 금호문으로 안내한다.

궁능유적본부 관람코스확인 2026.09.23

창덕궁 전각관람은 돈화문 → 금천교 → 인정전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낙선재 순서이고, 낙선재가 마지막이다(후원 관람은 별도 코스). 국가유산청은 낙선재가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있다고 적는다.

국가유산청 보물 「창덕궁 낙선재」 설명확인 2026.09.23

헌종 13년(1847)에 지었다(궁능유적본부 연표: 낙선당 터). 원래 왕의 연침 공간으로 지었고, 이듬해 빈의 처소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고쳐 지었다. 궁궐 안에 사대부 주택 형식으로 지은 건물은 낙선재와 연경당뿐이다. 궁궐 침전과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았다. 남행각의 정문 장락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에 정면 6칸·측면 2칸으로 서 있고, 맨 왼쪽의 앞으로 나온 1칸이 누마루다. 여러 문양의 창호가 달렸고, 누마루와 그 뒤 온돌방 사이의 만월문(둥근 문)을 「단연 돋보이는 백미」로 꼽는다.

국가유산청 설명확인 2026.09.23

낙선재는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소로 쓰였고, 그 뒤 조선왕조의 마지막 영친왕 이은이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으며, 1966년부터 1989년까지는 이방자 여사가 기거했다. 궁능유적본부는 낙선재 권역을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순정황후, 의민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덕혜옹주)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라고 적는다. 석복헌과 수강재는 상당 부분이 변형되어 있다.

국가유산청 설명확인 2026.09.23

낙선재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굴뚝으로 가꾼 화계(계단식 꽃밭)가 있고, 그 위 꽃담 너머로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있다. 궁능유적본부는 2026년 봄(3월 27일~4월 2일) 「평소 관람객의 접근이 제한되었던 낙선재 후원 일대」를 둘러보는 특별 해설을 하루 두 차례, 회당 24명 추첨으로 운영했다.

방문 전에 알아야 할 것
  • 창덕궁은 매주 월요일에 쉽니다(공휴일과 겹치면 열고 그다음 첫 비공휴일에 쉽니다). 2~5월·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1월 09:00~17:30이며 입장은 마감 1시간 전까지입니다. 전각 관람 대인 3,000원, 궁궐 통합관람권 6,000원(후원 제외). 만 18세 이하·만 65세 이상 외국인과 한복 착용자는 무료입니다. 낙선재는 전각 관람 코스에 들어 있습니다(궁능유적본부, 2026년 9월 23일 확인).
  • 돈화문은 2024년 11월 11일부터 보수공사 중이며, 공사 기간에는 입구 금호문·출구 금호문 옆 작은 문으로 운영합니다. 방문 전 궁능유적본부의 출입문 공지를 확인합니다. 창덕궁에는 주차장이 없습니다.
  • 낙선재 심화해설(「창덕궁 깊이보기」)은 매주 금·토·일 14:30에 자원봉사단체가 진행합니다. 해설 시간은 기관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