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 JEONGDONG

리나가 늦가을 오후에 걸은 경희궁, 흥화문에서 서암까지 여섯 칸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약 460m, 무료로 여는 서울의 「서궐」을 흥화문 → 금천교 → 숭정전 → 자정전 → 태령전 → 서암 순서로 보는 법

창덕궁에서 「동궐」이라는 이름을 배운 리나는 그 짝이 되는 「서궐」이 늘 궁금했다. 셋이 처음 공원을 걸은 다음 날, 리나는 혼자 경희궁에 가서 전각마다 이름과 쓰임을 한 칸씩 적어 보기로 한다.

맑은 늦가을 오후, 넓은 화강암 돌마당 오른쪽을 비스듬히 걸어오며 어깨 너머로 정전 지붕을 올려다보는 리나, 호기심 어린 환한 미소, 오른손에 덮은 수첩, 왼손은 가방끈, 뒤로 2단 돌 월대와 가운데 돌계단 위에 선 회색 기와 겹처마 지붕·붉은 기둥·초록 문살의 정전과 좌우로 이어진 붉은 기둥 회랑, 잎 진 나무와 파란 하늘. 편집 이미지.

리나는 궁궐에 가면 건물마다 붙은 이름부터 읽는 여행자입니다. 일본에서 온 스물세 살 리나의 수첩에는 장소마다 칸이 나뉘어 있어요. 칸 위에는 건물 이름을 적고, 그 아래에는 그 건물이 무엇을 하던 곳인지 한 줄을 적습니다. 이름과 쓰임을 나란히 적어 두면, 처음 본 궁도 어느새 머릿속에 지도로 그려지거든요. 그래서 리나의 궁궐 쪽 수첩은 글씨보다 네모 칸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부드러운 늦가을 빛이 드는 숙소 창가 책상에 앉아, 펼친 수첩 한 쪽에 연필로 작은 네모 칸 여섯 개를 세 개씩 두 줄로 그리는 리나의 비스듬한 옆모습, 살짝 올라간 입꼬리, 수첩 곁에 화면이 꺼진 휴대폰. 편집 이미지.
수첩 한 쪽에 먼저 그려 둔 네모 칸 여섯 개.

어제 리나는 보라매공원에서 말리, 마야와 셋이 처음으로 함께 걸었습니다. 말리와 마야를 처음 이어 준 날이라, 하루 내내 두 사람의 말을 듣느라 리나의 수첩은 거의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어제의 즐거운 소란을 뒤로하고, 혼자서 천천히 칸을 채우는 날로 정했습니다. 수첩을 뒤적이다 리나는 예전에 창덕궁 인정전에서 적어 둔 한 줄을 다시 찾았어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 「동궐」이라고 불렀다는, 짧지만 오래 마음에 남은 메모였습니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도 있을 것 같아서, 리나는 그때 그 줄 옆에 물음표를 하나 붙여 두었어요. 오늘 리나가 찾아가는 그 물음표의 답이 바로 경희궁입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궐」이라고도 불렸어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 부른 「동궐」과 짝을 이루는 이름입니다. 동궐을 이미 걸어 본 리나는, 짝이 되는 서궐은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걸으며 견줘 보고 싶었어요.

오늘 걸을 곳은 경희궁 한 곳입니다.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와 정문인 흥화문까지 걷고, 흥화문 → 금천교 → 숭정전 → 자정전 → 태령전 → 서암 순서로 봅니다. 경희궁을 운영하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소개하는 여섯 곳이고, 소개하는 순서도 이와 같아요. 이 글은 여섯 곳을 리나의 수첩 칸처럼 하나씩 나눠, 이름과 쓰임을 함께 적었습니다. 몇 시까지 여는지, 해설은 무슨 요일에 있는지, 들고 가면 안 되는 것은 무엇인지도 함께 담았어요.

The Cue

경희궁은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에 있는 사적이에요. 조선 후기 임금들이 머물던 이궁으로, 도성 서쪽에 있어 서궐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분관으로 운영하고, 관람료는 없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고, 입장은 오후 5시 30분에 마감합니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은 쉬어요.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흥화문까지는 약 460m, 걸어서 7분쯤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 역·출구: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 흥화문까지 약 460m, 걸어서 7분쯤.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에서는 약 720m, 걸어서 10분쯤.
  •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 서울역사박물관 바로 곁이에요.
  • 시간: 09:00~18:00, 입장 마감 17:30.
  • 쉬는 날: 매주 월요일, 1월 1일.
  • 요금·문의: 무료. 02-724-0274~6.
  • 꼭 볼 것: ① 금천교 난간의 돌짐승 ② 정전 숭정전과 편전 자정전을 차례로 ③ 태령전 뒤 바위 서암.
  • 해설: 금요일 오후 2시·3시, 토요일 오후 1시·2시·3시, 일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30분마다.
  • 들고 가지 않을 것: 커피·음료수·과자 같은 음식은 들고 들어가지 않도록 부탁하고 있어요.

몇 번 출구로 나가나요 —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약 460m, 걸어서 7분쯤

경희궁에 갈 때는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가는 길이 가깝습니다. 4번 출구에서 정문인 흥화문까지는 약 460m예요. 걸어서 7분쯤이면 닿아요. 리나의 수첩 첫 줄도 역·출구·시간을 적는, 늘 쓰는 세 마디 그대로였어요. 「서대문 — 4 — 약 7분」이라는 줄이었고, 리나는 그 옆에 오늘의 칸 수인 6을 작게 적었습니다.

카카오맵에서 보기 — 경희궁

맑은 늦가을 오후, 잎이 성글어진 가로수가 늘어서고 낙엽이 깔린 도심 큰길의 넓은 보도를 혼자 걸어오는 리나를 비스듬한 앞쪽에서, 오른손에 접은 수첩, 왼손은 가방끈, 설레는 시선은 길 앞쪽, 멀리까지 이어지는 길. 편집 이미지.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흥화문까지 약 460m, 걸어서 7분쯤.

리나는 오후 두 시가 조금 지나 4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리나는 개찰구를 나서기 전에 휴대폰 지도에 「경희궁 흥화문」을 미리 찍어 두었어요. 지도 앱에서 주소로 찾는다면 「새문안로 45」를 넣으면 됩니다. 새문안로 55는 서울역사박물관 본관 주소라, 헷갈리지 않게 45를 쓰면 좋아요. 리나도 두 숫자를 수첩에 나란히 적어 두고, 경희궁 주소인 45에만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광화문 쪽에서 온다면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로 나와도 됩니다. 7번 출구에서 흥화문까지는 약 720m로, 걸어서 10분쯤 걸립니다. 서대문역보다 조금 멀지만, 광화문 근처에서 다른 일정을 마치고 온다면 이 길도 괜찮아요. 어느 쪽으로 오든 오후 늦게 간다면 시간을 한 번 챙기세요. 경희궁은 오후 6시에 닫고, 입장은 오후 5시 30분에 마감합니다.

경희궁은 어떤 궁인가요 — 서궐, 그리고 경덕궁이라는 첫 이름

흥화문 앞에서 리나는 칸을 채우기 전에 궁 전체의 이름부터 정리했습니다. 경희궁은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한 궁이에요. 원래 이 자리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터에 왕의 기운이 서려 있어, 집을 거두고 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리나는 이 전해지는 이야기를 칸 안이 아니라 칸 밖 여백에 따로 적었습니다.

지금은 경희궁이라고 부르지만, 이 궁의 처음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의 시호 「경덕(敬德)」과 소리가 같았어요. 그래서 1760년(영조 36)에 이름을 경희궁으로 바꿨습니다. 안내문에서 두 한자를 나란히 본 리나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났어요. 慶과 敬은 일본어로도 둘 다 「けい」로 읽는 글자라, 소리가 겹친다는 말이 바로 와닿았거든요.

리나는 수첩 맨 위에 「慶 = 敬 = けい」라고 적었습니다. 글자는 다른데 소리가 같아 이름을 바꿨다는 이야기는, 한자를 소리로 읽는 리나에게 특히 재미있었어요. 지난번 운현궁에서도 리나는 세 건물 이름에 모두 들어 있던 老 자를 일본어 소리로 먼저 알아봤습니다. 이름을 소리로 한 번, 뜻으로 한 번 읽는 것이 리나가 궁을 읽는 방식이에요. 오늘은 그 방식으로 여섯 칸을 다 채워 보기로 했습니다.

경희궁은 한때 꽤 큰 궁이었고, 인조부터 철종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을 이궁으로 썼어요. 이궁은 임금이 머무는 본궁 말고 따로 둔 궁을 말합니다. 정전인 숭정전,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과 회상전 등 크고 작은 건물이 100여 동 있었어요. 리나는 이 문장에서 정전·편전·침전이라는 세 낱말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오늘 칸을 나누는 기준이 될 말이었거든요.

맑은 늦가을 오후, 넓은 돌 포장 앞마당 너머 정면에서 본 궁궐 정문, 붉은 기둥 넷 사이로 뚫린 세 칸, 넓게 퍼진 처마 아래 청록 단청과 끝이 살짝 들린 회색 기와지붕, 낮은 돌 기단과 양옆의 짧은 담, 뒤로 잎이 거의 진 나무들과 문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궁 안. 편집 이미지.
첫째 칸,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첫째 칸 흥화문 — 정문, 그리고 두 번이나 자리를 옮긴 문

첫째 칸은 정문 흥화문입니다. 경희궁의 정문이고,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어요. 리나는 칸 위에 「흥화문」, 아래에 「정문」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은 칸 하나에 다 담기 어려울 만큼 걸어온 사연이 많은 문이었어요.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원래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흥화문은 원래 금천교 동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지금 구세군 빌딩이 서 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1932년,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쓰려고 이 문을 떼어 갔습니다. 광복 뒤 박문사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영빈관이 들어섰다가 이어서 신라호텔이 들어섰어요. 흥화문은 그동안 궁이 아닌 곳에서 그 정문으로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흥화문은 경희궁 복원 사업 때 다시 경희궁 터로 돌아왔습니다. 다만 원래 자리에는 이미 구세군 빌딩이 서 있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원래 자리에서 서쪽으로 100여m 옮긴 지금의 자리에 복원했습니다. 리나는 흥화문 칸 아래에 줄을 하나 더 그어 칸을 넓혔어요. 그리고 「옮겨 다닌 문」이라고 적고, 화살표 세 개로 문이 지나온 자리를 그렸습니다.

맑은 늦가을 오후, 정문의 붉은 기둥 둘 사이에 서서 고개를 들어 처마 아래를 올려다보는 리나의 비스듬한 뒷모습, 두 팔로 가슴께에 안은 덮은 수첩, 머리 위의 청록 단청과 넓게 퍼진 처마, 발아래 돌 바닥과 양옆의 짧은 담. 편집 이미지.
두 번이나 자리를 옮긴 문, 처마부터 올려다보기.

리나는 문 아래에 서서 처마부터 올려다봤습니다. 흥화문은 기둥 사이가 뚫린 큰 문이라, 그 아래를 지나며 처마와 단청을 올려다보기 좋아요. 붉은 기둥과 청록 단청은 이 뒤로 이어지는 숭정전·자정전·태령전에서도 계속 보게 됩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문 아래에서 잠깐 멈춰 처마부터 한 번 올려다보세요. 뒤에 볼 전각과 견줘 볼 기준이 하나 생깁니다.

둘째 칸 금천교 — 돌짐승과 도깨비 얼굴이 지키는 돌다리

둘째 칸은 정문을 지나 만나는 돌다리, 금천교입니다. 궁 안으로 흐르던 금천이라는 물길 위에 놓인 돌다리예요.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 바로 앞에 있어서 찾기 쉬워요. 1619년(광해군 11)에 처음 지은 다리인데, 일제가 이 다리를 땅에 묻어 버렸어요. 서울시가 2001년 발굴로 찾아낸 옛 돌들을 바탕으로 지금처럼 복원했습니다.

금천교에서 볼 것은 난간입니다. 난간에는 돌짐승들이 앉아 있고, 다리 아래 둥근 홍예 사이에는 도깨비 얼굴이 새겨져 있어요. 홍예는 무지개처럼 둥글게 쌓아 올린 돌 구조를 말합니다. 돌짐승과 도깨비 얼굴은 궁 바깥의 나쁜 기운이 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뜻을 담고 있어요. 리나는 난간 끝에 앉은 돌짐승 앞에서 몸을 낮추고, 그 얼굴을 한참 마주 봤습니다.

늦가을 오후 측광 속, 네모난 화강암 판석이 깔린 넓은 돌다리 난간 끝에 앉은 해태 모양 돌짐승 곁에 몸을 낮추고 그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리나의 옆모습 클로즈업, 놀람이 섞인 집중한 표정, 돌의 결과 풍화 자국. 편집 이미지.
둘째 칸 금천교, 난간 끝에 앉은 돌짐승.

리나는 금천교 칸에 「돌다리 / 문지기」라고 적었습니다. 정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고, 금천교는 나쁜 기운을 걸러 내는 다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두 칸을 나란히 두고 보니, 궁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경계를 두 번 만난 셈이었어요.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다리를 그냥 건너지 말고 난간 끝의 돌짐승부터 찾아보세요. 이 궁이 바깥과 안을 어떻게 나눴는지가 거기서 먼저 보입니다.

셋째 칸 숭정전 — 조회와 즉위식이 열린 정전

셋째 칸은 오늘 칸 가운데 가장 큰 건물,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입니다. 정전은 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에요. 임금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고, 궁중 잔치를 열고, 사신을 맞는 등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입니다. 숭정문으로 들어서면 숭정전이 정면으로 보여요. 리나는 문 안쪽에서 걸음을 멈추고, 넓은 돌마당 끝 두 단 월대 위에 선 정전을 한눈에 담았습니다.

맑은 늦가을 오후, 넓은 화강암 돌마당 끝 2단 돌 월대 위에 선 정전, 회색 기와 겹처마 지붕과 붉은 기둥·초록 문살 창호, 가운데 어두운 열린 칸, 마당 양옆으로 이어진 붉은 기둥 회랑과 파란 하늘, 화면 왼쪽 아래에 작게 서서 정전을 바라보는 리나의 비스듬한 뒷모습. 편집 이미지.
셋째 칸, 두 단 월대 위의 정전 숭정전.

숭정전은 경종, 정조, 헌종 세 임금이 즉위식을 올린 자리이기도 합니다. 처음 지은 것은 1618년(광해군 10)쯤이에요.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리나는 숭정전 칸 위에 「숭정전」, 아래에 「정전 — 모이는 곳」이라고 적었어요. 그리고 그 옆에 즉위한 세 임금의 이름을 작은 글씨로 나란히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나 앞에 선 숭정전은 처음 지은 그 건물이 아닙니다. 일제는 1926년 원래의 숭정전 건물을 일본인 사찰에 팔았어요. 그 건물은 지금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 자리의 숭정전은 발굴로 찾은 기단석 등을 이용해 1991년에 복원한 거예요. 리나는 숭정전 칸 귀퉁이에 「원래 건물은 다른 곳에」라고 작게 적었습니다.

정전답게 숭정전의 안쪽도 임금의 자리를 중심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안쪽 당가에는 임금이 앉는 용상을 두었어요. 그 뒤로는 곡병과 일월오봉병을 세워 자리를 감쌌습니다. 일월오봉병은 해와 달, 다섯 봉우리를 그린 병풍이에요. 그리고 우물 정(井) 자처럼 짠 우물천장에는 서로 마주 보는 용 두 마리를 새겨 두었습니다.

숭정전 앞에서는 보는 자리를 두 번 바꿔 보세요. 먼저 숭정문 안쪽에 서면 돌마당과 두 단 월대, 그 위의 정전이 한 화면에 들어옵니다. 그다음 조금 더 다가가면 붉은 기둥과 초록 문살 창호가 가까이 보여요. 멀리서는 정전의 크기를, 가까이서는 색과 결을 보는 셈입니다. 리나도 이 두 자리에서 한 번씩 멈춰 서서 숭정전 칸에 작은 그림 두 개를 그렸어요.

리나는 마당에서 숭정전 지붕을 올려다보며 창덕궁 인정전을 떠올렸습니다. 동궐에서 본 정전도 이렇게 넓은 돌마당 끝에 높이 서 있었어요. 다만 서궐의 정전은 한 번 떠났다가 발굴한 돌 위에 다시 선 건물이었습니다. 리나는 수첩을 덮기 전에 붉은 기둥과 초록 문살의 색을 한 번 더 눈에 담았어요. 말리라면 이 초록을 무슨 이름으로 부를지 궁금해졌습니다.

넷째 칸 자정전 — 임금이 신하들과 일하던 편전

넷째 칸은 편전인 자정전입니다. 편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열며 날마다 나랏일을 보던 건물이에요. 경연은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던 자리를 말합니다. 정전이 모두가 모이는 큰 무대라면, 편전은 임금이 매일 일하던 방에 가까워요. 리나는 이 차이를 잊지 않으려고 칸 두 개를 나란히 붙여 적었습니다.

맑은 늦가을 오후, 붉은 기둥과 연두·청록 격자 창호가 가득한 전각 정면 바로 앞에 서서 겹처마 끝의 장식을 고개를 살짝 기울여 올려다보는 리나, 차분한 표정, 허리께에 두 손으로 모아 든 덮은 수첩. 편집 이미지.
넷째 칸, 임금이 신하들과 일하던 편전 자정전.

수첩에는 「정전 = 모이는 곳 / 편전 = 일하는 방」이라는 줄이 생겼습니다. 리나는 이 한 줄이 오늘 적은 것 가운데 가장 쓸모 있는 줄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음에 다른 궁에 가서도 정전과 편전을 먼저 찾으면, 그 궁에서 임금이 보낸 하루가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궁에 가는 사람도 이 두 낱말만 알고 가면 건물이 한결 덜 낯설어요. 큰 마당 끝의 높은 건물이 정전, 그다음에 만나는 건물이 편전이라고 기억해 두면 됩니다.

자정전에는 다른 쓰임도 있었습니다. 숙종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장례를 치르는 동안 관을 모셔 두는 빈전으로 쓰였어요.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잠시 모셔 두기도 했습니다. 어진은 임금의 얼굴을 그린 그림으로, 뒤에 볼 태령전에서도 다시 나오는 말이에요. 리나는 편전 칸 아래에 쓰임을 하나씩 더 적다가, 칸이 금세 좁아진 걸 보고 웃었습니다.

자정전은 1617~20년(광해군 9~12) 사이에 지었고, 일제가 훼손했습니다. 지금 건물은 옛 궁궐 그림인 「서궐도안」에 따라 1998년에 복원한 거예요. 같은 해에 둘레의 회랑도 함께 복원했습니다. 자정전 서쪽에서는 발굴 때 바닥에 깔던 벽돌인 전돌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 자리는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해 복원했습니다.

다섯째 칸 태령전 — 영조의 어진을 모시던 곳

다섯째 칸은 자정전 다음으로 소개되는 태령전입니다.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에요. 처음에는 정해진 쓰임이 따로 없던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다 영조의 어진을 새로 그리자, 1744년(영조 20)에 이곳을 손보아 고친 뒤 어진을 모셨어요. 영조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혼전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붉은 기둥·초록 창호·회색 기와의 작은 단층 전각, 낮은 돌 기단과 얕은 돌계단, 건물 뒤와 옆의 큰 화강암 바위와 소나무, 계단 아래에서 가슴께에 펼쳐 든 수첩에 연필로 칸을 그리는 리나, 정리하는 듯한 집중한 표정. 편집 이미지.
다섯째 칸, 영조의 어진을 모시던 태령전.

혼전은 장례를 마친 뒤 신위를 모셔 두던 곳을 말합니다. 리나는 태령전 칸에 「쓰임이 나중에 생긴 집」이라고 적었어요. 앞의 세 칸은 문이든 다리든 정전이든, 처음부터 할 일이 정해진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태령전은 어진이 들어오고 나서야 이름과 쓰임이 함께 또렷해졌어요. 리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어 칸 테두리를 한 번 더 그었습니다.

지금의 태령전은 2000년에 그 일곽과 함께 복원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이에요. 이번에도 복원의 기준은 자정전과 같은 「서궐도안」이었습니다. 방금 본 숭정전과 견주면 한결 작은 건물이라, 앞에 서면 둘레 전체가 조용하게 느껴져요. 리나는 여기서 잠깐 수첩을 덮고, 건물 뒤로 보이는 바위 쪽을 바라봤습니다.

여섯째 칸 서암 — 태령전 뒤 바위 속 샘, 왕암에서 서암으로

여섯째 칸은 태령전 뒤에 있는 바위 서암입니다. 생김새가 기이한 바위로, 그 속에는 암천이라 불리는 샘이 있어요. 그래서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로 꼽히던 바위입니다. 큰 화강암 바위 아래쪽이 굴처럼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 그 틈을 찾는 재미가 있어요. 리나는 바위 앞에서 칸 이름을 적기 전에, 연필을 쥔 채 한참 바위만 바라봤습니다.

늦은 오후의 비스듬한 가을빛 속, 아래쪽이 굴처럼 오목하게 파여 어두운 틈을 이룬 큰 화강암 바위와 그 위의 넓은 바위판, 주변의 마른 풀과 낮은 덤불,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손으로 수첩을 들고 그 틈을 감탄하듯 바라보는 리나의 전신. 편집 이미지.
여섯째 칸, 태령전 뒤 바위 서암.

이 바위의 원래 이름은 왕암(王巖)이었습니다. 그 이름 때문에 광해군이 이곳에 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어요. 1708년(숙종 34)에 이름을 서암(瑞巖)으로 고쳤습니다. 숙종은 「瑞巖」 두 글자를 직접 크게 써서 새겨 두게 했어요. 그 글자를 새겨 두었던 사방석은 지금 바위 곁이 아니라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습니다.

리나는 서암 칸에 「王 → 瑞」라고 적었습니다. 王은 일본어로 「おう」, 瑞는 「ずい」로 읽어요. 소리는 전혀 다르지만, 뜻으로 읽으면 왕을 뜻하던 바위가 좋은 일을 부르는 상서로운 바위가 된 셈이었습니다. 경덕궁이 경희궁이 된 이야기와 나란히 두니, 이 궁에는 이름을 바꾼 이야기가 둘이나 있었어요. 리나는 첫 줄의 「慶 = 敬」과 이 줄을 화살표로 이었습니다.

100여 동이 있던 궁에서 여섯 곳이 남기까지

여섯 칸을 다 채운 리나는 수첩 뒷장에 칸 세 개를 따로 그렸습니다. 오늘 밑줄을 그은 세 낱말, 정전·편전·침전이었어요. 정전 칸에는 숭정전, 편전 칸에는 자정전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침전 칸에 적을 건물은 오늘 걸은 여섯 곳에 없었어요. 융복전과 회상전이라는 침전의 이름은 남아 있지만, 서울역사박물관이 소개하는 여섯 곳에 침전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리나는 침전 칸을 비워 둔 채, 100여 동이 있던 궁이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찾아 적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희궁의 건물 상당수를 옮겨 갔어요. 일제가 궁 안에 학교를 세우면서 숭정전 등 남은 건물도 대부분 헐렸습니다. 그때 궁의 면적도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어요. 그 뒤 경희궁 터 2만 5천여 평을 떼어 내 전매국 관사를 지으면서, 경희궁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사라져 가던 궁이 다시 모습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입니다. 1980년 9월 경희궁 터가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서울시는 1986년 이곳에 서울시립박물관을 짓기로 하고 경희궁 터를 넘겨받았습니다. 1985년부터 여러 차례 발굴이 이어졌고, 숭정전 등 정전 지역을 복원해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했어요. 서울역사박물관도 같은 2002년에 경희궁 터 안에 세워졌습니다.

리나는 이 내력을 읽고 나서, 흥화문과 숭정전 칸에 적은 「옮겨 다닌 문」과 「원래 건물은 다른 곳에」를 다시 봤습니다. 오늘 본 여섯 곳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거쳐, 궁의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해 주는 자리였어요. 그래서인지 빈 침전 칸도 리나에게는 비어 있다기보다 아직 기다리는 칸처럼 보였습니다. 리나는 그 칸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테두리만 남긴 채, 오늘의 여섯 칸을 한 번 더 훑어보고 수첩을 덮었어요.

빛이 기울기 시작한 늦가을 오후, 넓은 화강암 돌마당 가장자리 회랑의 붉은 기둥 곁에 서서 마당 너머 2단 월대 위 정전의 회색 기와 겹처마 지붕을 돌아보는 리나의 비스듬한 뒷모습, 생각에 잠긴 잔잔한 옆얼굴, 오른손에 펼친 수첩. 편집 이미지.
회랑 곁에서 다시 돌아본 숭정전 지붕.

해설은 언제 있나요 — 금·토·일 오후, 그리고 걸을 때 지킬 것

경희궁에서 해설을 들으려면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오후에 맞춰 가면 됩니다. 금요일은 오후 2시와 3시예요. 토요일은 오후 1시, 2시, 3시입니다. 일요일은 오후 1시, 1시 30분, 2시, 2시 30분, 3시예요. 금요일과 토요일은 한국의재발견 우리궁궐지킴이(02-723-4206), 일요일은 우리문화숨결 궁궐길라잡이(02-735-5733)가 맡습니다.

리나는 미리 찾아 둔 해설 시간을 수첩 맨 아래 줄로 옮겨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금·토·일 2시?」라고 물음표를 붙였어요. 물음표는 리나가 다시 올지도 모르는 곳에만 붙이는 표시입니다. 오늘은 혼자 칸을 채웠으니, 다음에는 공식 해설 시간에 맞춰 와서 같은 칸을 다시 읽어 볼 생각이었어요. 평일에 간다면 리나처럼 여섯 곳의 순서를 미리 적어 가면 혼자서도 걷기 편해요.

늦은 오후의 따뜻한 빛 속, 연한 돌색 재킷 소매의 손이 다른 손바닥 위에 펼친 작은 수첩 맨 아래 줄 끝에 연필로 작은 물음표를 그리는 클로즈업, 뒤로 흐릿한 붉은 나무 기둥. 편집 이미지.
해설 시간 옆에 붙인 물음표, 「금·토·일 2시?」.

걸을 때 지킬 것도 하나 있습니다. 경희궁을 둘러볼 때는 커피나 음료수, 과자 같은 음식을 들고 들어가지 않도록 부탁하고 있어요. 리나도 가방에 든 음료는 꺼내지 않고 그대로 넣어 둔 채 걸었습니다. 관람료는 없어서 마음이 가볍지만, 문을 닫는 시간은 정해져 있어요. 오후 5시 30분이 입장 마감이니, 여섯 곳을 다 보려면 조금 일찍 도착하는 편이 좋습니다.

다시 흥화문으로 — 서대문역으로 돌아가는 길과 두 친구에게 보낸 사진

해가 기울 무렵 리나는 서암에서 다시 흥화문 쪽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에는 일부러 숭정전 마당을 한 번 더 지났어요. 들어올 때는 정전이 그저 큰 건물이었는데, 칸을 다 채우고 나니 세 임금이 즉위한 자리로 보였습니다. 흥화문에서 서대문역 4번 출구까지는 올 때 걸은 약 460m를 거꾸로 걸으면 돼요. 돌아갈 때도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가면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해가 기우는 늦가을 오후, 정문 바깥 돌 바닥에 멈춰 서서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쓰며 혼자 미소 짓는 리나의 비스듬한 정면, 왼손에 접은 수첩, 뒤로 흐릿한 정문의 붉은 기둥과 넓은 처마. 편집 이미지.
흥화문 앞에서 두 친구에게 한 장씩 보낸 사진.

정문 앞에서 리나는 오늘 찍은 사진을 넘겨 보다 한 장을 골랐습니다. 숭정문 안쪽에서 돌마당 끝의 숭정전을 넓게 담은 사진이었어요. 붉은 기둥과 초록 문살이 또렷하게 나와서, 색을 보는 말리도 넓은 구도를 보는 마야도 좋아할 것 같았거든요. 리나는 같은 사진을 두 사람에게 따로 한 장씩 보냈습니다. “어제는 셋이 공원, 오늘은 혼자 궁이에요. 서쪽 궁궐의 정전, 초록 창살이 예뻐요.”

메시지를 보낸 뒤 리나는 휴대폰을 넣고 수첩을 다시 펼쳤습니다. 여섯 칸에는 이름과 쓰임이 두 줄씩 채워져 있었어요. 그 아래로 「慶 = 敬 = けい」와 「王 → 瑞」가 화살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뒷장에는 테두리만 남은 침전 칸이 있었고, 맨 아래에는 해설 시간 옆 물음표가 하나 있었어요. 리나는 수첩을 가방에 넣고, 올 때와 같은 약 460m를 거꾸로 걸어 서대문역으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온 리나는 창덕궁에서 적은 쪽을 펼쳐, 「동궐」 옆에 붙여 두었던 물음표를 지웠습니다. 그 자리에 「서궐 — 경희궁」이라고 적고, 오늘 채운 여섯 칸이 있는 쪽으로 긴 화살표를 그었어요. 물음표 하나를 지운 날이지만, 해설 시간 옆에는 새 물음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리나는 새로 생긴 그 물음표가 싫지 않았어요. 한 번 가 본 곳을 다른 날 다시 읽는 것이 리나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이거든요.

Common Mistakes — 자주 하는 실수

  • 월요일에 가기

    경희궁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에 쉬어요.

  • 오후 5시 30분이 지나서 도착하기

    오후 6시에 닫지만 입장은 오후 5시 30분에 마감해요.

  • 주소를 새문안로 55로 찾기

    55는 서울역사박물관 본관 주소예요. 경희궁은 새문안로 45입니다.

  • 금천교를 그냥 건너기

    난간의 돌짐승과 홍예 사이 도깨비 얼굴은 나쁜 기운이 궁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이에요. 다리 위에서 잠깐 멈춰 보세요.

  • 숭정전만 보고 나오기

    편전 자정전, 영조의 어진을 모시던 태령전, 그 뒤의 바위 서암까지 이어서 보면 궁의 쓰임이 차례로 보여요.

  • 음료와 간식을 들고 들어가기

    커피·음료수·과자 같은 음식은 들고 들어가지 않도록 부탁하고 있어요.

FAQ — 자주 묻는 질문

어느 역 어느 출구로 가요?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흥화문까지 약 460m, 걸어서 7분쯤이에요.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에서는 약 720m, 걸어서 10분쯤입니다.

입장료가 있나요?

없어요. 경희궁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요.

몇 시까지 여나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고, 입장은 오후 5시 30분에 마감해요.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은 쉽니다.

해설은 언제 있나요?

금요일 오후 2시·3시, 토요일 오후 1시·2시·3시, 일요일 오후 1시·1시 30분·2시·2시 30분·3시예요. 금·토는 한국의재발견 우리궁궐지킴이(02-723-4206), 일요일은 우리문화숨결 궁궐길라잡이(02-735-5733)가 맡아요.

왜 서궐이라고 불러요?

도성의 서쪽에 있어서예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 동궐이라고 부른 것과 짝을 이루는 이름입니다.

처음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경덕궁이었어요. 원종의 시호 「경덕」과 소리가 같아 1760년(영조 36)에 경희궁으로 바꿨어요.

숭정전은 옛 건물 그대로인가요?

아니에요. 원래 건물은 1926년 팔려 지금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쓰이고, 지금 자리의 숭정전은 발굴한 기단석 등을 이용해 1991년에 복원했어요.

문의는 어디로 하나요?

02-724-0274~6이에요.

Recap — 출발 전 30초

  •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 약 460m, 걸어서 7분쯤 → 흥화문(새문안로 45)
  • 09:00~18:00, 입장 마감 17:30 · 월요일·1월 1일 휴관 · 무료
  • 흥화문 → 금천교 → 숭정전(정전) → 자정전(편전) → 태령전 → 서암 순서로
  • 금천교 돌짐승, 숭정전·자정전의 쓰임 차이, 태령전 뒤 서암
  • 해설은 금·토·일 오후 · 음식은 들고 들어가지 않기

참고 자료

확인한 자료
  •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관람안내관람시간 09:00~18:00(입장 마감 17:30) · 휴관일 1월 1일, 매주 월요일 · 관람료 무료 · 문의 02-724-0274~6 · 해설 안내 금(14·15시)·토(13·14·15시)·일(13시~15시, 30분마다)과 맡는 두 단체 · 커피·음료수·과자 등 음식물 반입 자제확인 2026-10-29
  • 서울역사박물관 — 분관 소개경희궁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 · 관람시간 · 문의 전화확인 2026-10-29
  •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소개사적 · 조선 후기 이궁 · 1617년(광해군 9) 짓기 시작 · 정원군 집터 이야기 · 처음 이름 경덕궁과 1760년(영조 36) 개명 · 서궐과 동궐 · 인조부터 철종까지 10대의 이궁 · 100여 동의 건물 · 일제강점기 학교와 면적 축소 · 정전 지역 복원과 2002년 공개 · 주소 새문안로 45확인 2026-10-29
  •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역사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과 건물 이건 · 전매국 관사 · 1980년 9월 사적 지정 · 1986년 서울시의 터 취득(서울시립박물관 건립) · 1985년부터의 발굴 · 숭정전 1991년, 자정전과 회랑 1998년, 태령전 일곽 2000년 복원 · 흥화문을 원래 자리에서 서쪽으로 100여m 옮겨 복원확인 2026-10-29
  •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전각 소개흥화문(정문·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원래 자리·박문사와 신라호텔 정문) · 금천교(1619년·돌짐승과 도깨비 얼굴·2001년 발굴 뒤 복원) · 숭정전(정전의 쓰임·경종·정조·헌종 즉위·1926년 매각, 동국대학교 정각원·내부 당가와 우물천장) · 자정전(편전·빈전·서궐도안·전돌) · 태령전(영조 어진·1744년·혼전·정면 5칸 측면 2칸) · 서암(암천·왕암·1708년 개명·사방석은 국립고궁박물관)확인 2026-10-29
  • 서울역사박물관 — 공지사항서울역사박물관과 분관의 임시 휴관·운영 변경 공지가 올라오는 목록확인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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